[지대폼장] 내 아이 ‘언어사춘기’도 관리가 필요하다
[지대폼장] 내 아이 ‘언어사춘기’도 관리가 필요하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8.03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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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참 편한 세상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세상의 모든 일과 정보를 보고 듣고 알 수 있으니까요. 굳이 머리를 쓸 일도 없습니다. 그냥 눈으로 보면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글자’는 신부의 들러리처럼 보조수단이 됐고, 우리는 제대로 된 ‘문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글의 힘은 말보다 크다”고 하는 주장이 과연 타당할까 의문을 가져봄 직합니다. 

말은 귀로 들으면서 곧바로 이해됩니다. 문장도 짧습니다. 바로바로 퍼 나르기 좋습니다. 그러나 글은 눈으로 보며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문장도 입말보다 긴 경우가 많으니, 여러 면에서 말보다 번거롭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글을 읽자, 책을 읽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일지도 모릅니다. 태어날 때부터 영상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을 테고요. 한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고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을 읽어내는 사람은 삶의 도약이 가능한 발판을 준비할 수 있지만, 외면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함정에 빠지게 될 그런 고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몇 번쯤 주요 전환점 앞에 서게 됩니다. 흔히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하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춘기입니다. 그런데 이 사춘기는 아이의 몸에서 어른의 몸으로 변화하는 단순한 육체적 변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겪게 해주는 우주적 사건이에요. 학생의 신분을 마감하고 사회인이 되는 것, 나만의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결혼과 출산,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전업, 그리고 은퇴 등으로 발생하는 신분의 변화 등도 우리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대나무의 매듭처럼 일정한 전환점을 맺고 또 그것을 넘어 살아갑니다. 속이 텅 빈 대나무가 하늘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매듭 덕분입니다. 

몸의 사춘기보다 먼저 오는 것이 ‘언어사춘기’입니다. 불행히도 그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중략) 몸의 사춘기는 ‘저절로’ 겪게 되고 각자 나름대로 대처하며 넘어갑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지요. 그러나 언어의 사춘기는 의식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습니다. 그냥 훌쩍 넘어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짐작 이상으로 혹독합니다. 

생각, 감각, 감정, 상상 등 그 무엇이나 언어로 파악할 수 있고, 또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세한 사유, 다양한 감각, 풍부한 감정, 자유로운 상상’을 최대한 누리며 살아가려면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언어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지 유심히 살펴보면 언어의 풍부함과 질이 삶의 그것들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요. 물론 말만 번듯한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건 앎과 삶이 일치되지 않은 가짜 지식만 쌓았기 때문입니다. 

21세기는 콘텐츠의 시대입니다.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삶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는 뜻입니다. 물론 입말과 영상으로 된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만, 섬세한 사유, 다양한 감각, 풍부한 감정 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콘텐츠를 생산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뿐 아니라 삶의 질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글을 읽고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도 분명합니다. 21세기 독서는 바로 이 점에서 오히려 더 중요하고 따라서 그 중요한 전환점인 언어사춘기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략)

말과 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하고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가 ‘언어사춘기’에 주목하면서 이를 ‘최선을 다해 마주해야 할 핵심 전환점’이라 강조하는 배경인데요. 따라서 우리 어른들은 언어사춘기의 중요성을 미리 살피고 깨달아서 적절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들의 삶을 간섭하고 재단하고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창조적으로 멋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잃지 않도록 지지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5~9쪽>

『언어사춘기』
김경집 지음│푸른들녘 펴냄│248쪽│14,500원

* 지대폼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폼나는 문장이라는 뜻으로 책 내용 중 재미있거나 유익한 문장을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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