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최대 예술제에 ‘평화의 소녀상’, “그래도 일본인은 변하지 않는다”
日 최대 예술제에 ‘평화의 소녀상’, “그래도 일본인은 변하지 않는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7.31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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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머리띠 한 소녀상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열리는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내달 1일부터 10월 14일까지 전시된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2010년부터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며 약 60만명이 관람하는 일본 최대 규모 예술제 중 하나다. 

이번에 전시되는 소녀상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청동 소녀상의 ‘원형’으로, 김운성·김서경 예술가 부부가 공동 제작해 2015년 도쿄 후루토 갤러리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전’에 출품 후 보관돼왔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를 위해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모형이 아닌 ‘평화의 소녀상’이 원형 그대로 일본 공공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지난 2012년 도쿄미술관에서는 ‘평화의 소녀상’의 작은 모형이 전시됐지만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된 바 있다.  

그러나 2012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 역시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돼있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일본 우익들의 방해를 우려해 경찰에 경비 강화를 요청했고, 전시기간 일본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교대로 전시장 주변을 지킬 예정이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를 준비한 쓰다 다이스케 예술감독은 <아사히신문>에 “감정을 흔드는 것이 예술인데, ‘감정을 해한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표현을 제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정치적인 주장을 하려는 기획전이 아니다. 전시물을 보고 각자 판단하는 자리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술감독의 바람처럼, 과연 일본인은 소녀상을 마주하고 정치적 판단을 배제할 준비가 돼 있을까. 전문가들의 평가는 박하다.

노 다니엘 일본 교토산업대 세계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책 『아베 신조의 일본』에서 과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사과한 고노 담화가 아베 내각에 의해 그 정당성이 부정당한 사실을 지적하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아베라는 한 정치가나 그 주위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전에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며 “그들의 생각이 대다수 일본인과 특별하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노 연구원은 일본이 혁명이 없었던 유일한 선진국이라는 사실과 일본인의 정치적 무관심, 일본 사람들이 가장 숭상하는 인물인 쇼토쿠 태자가 만든 ‘17조 헌법’ 제1조(화로써 고귀하고 도리에 거스르지 않음을 규범으로 하라) 등을 지적하며 “그들이 못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권위에 도전하고 기존질서를 바꾸며 정의의 이름으로 남을 징치하는 것”이라며 “피와 같은 재산을 은행에 수십년 맡겨도 이자가 안 나오는 현실에 대해 불평을 말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한다. 권력이나 지식을 가진 이들이 바꾸자면 따르고, 바꾸자는 말이 안 나와도 ‘지금 이대로 좋다.’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할 다케시마라는 바윗덩어리를 우익인사들이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떠들면 ‘아 그런가’ 생각하고, 한국정부나 시민단체가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외쳐도, 좋아하는 한국 관광을 하고 배용준의 드라마 비디오를 빌리는 데 크게 지장이 없으면 아무래도 좋다. 그래도 한국 기자가 ‘독도는 한국 땅인데 왜 일본 땅이라고 하느냐’고 물으면 조용히 ‘미안하다.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재일조선인 2세이자 도쿄게이자이대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서경식 역시 책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일본) 사람들은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라는 사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일까. 적어도 어느 세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는 ‘사실’의 유무가 아니라 명명백백한 사실 앞에 서 있으면서 거기에 등 돌리고 지나칠 수 있는 심성이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일본인들이여, 자신의 책임을 깨닫기 바란다”며 “여러분이 요구받고 있는 것은 과거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기인하는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미래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의 가까운 미래를 전쟁의 위기로부터 구출할 수 있을지, 여러분 자신의 것인 평화를 확보할 수 있을지, 그 책임이 바로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게 되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권력투쟁에서 물러나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패배는 아니야.”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책 『미움받을 용기』(2014)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한국(100만부)에서보다 일본(168만부)에서 더 팔렸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이 빛나는 문장은 그들의 명백한 ‘잘못’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연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아직 소녀상을 마주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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