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 ‘불매운동’만 하면 해결되나요?
일본의 경제보복, ‘불매운동’만 하면 해결되나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7.30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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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참가 사연 등을 밝히는 '일본대사관 앞 시민 촛불 발언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참가 사연 등을 밝히는 '일본대사관 앞 시민 촛불 발언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보이콧(Boycott )이라는 말은 ‘찰스 보이콧’(Charles Boycott )이란 이름에서 유래한다. 보이콧은 영국인 지주인 언(Earl Erne ) 백작의 재산관리인으로 1880년 임대인의 착취로부터 소작농을 보호하기 위한 소작료 인하 운동에 극렬히 반대해 뭇사람의 미움을 샀다. 당시 영국인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보이콧을 상대하지 말자고 결의하면서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그의 토지에서 일하기를 거부했다. 심지어 주변 가게들은 그에게 물건을 팔지도 않았다. 이후 마이클 다빗(Michael Davitt )이 책 『The Fall of Feudalism in Ireland(아일랜드 봉건 제도의 붕괴 )』에서 ‘보이콧’을 “보이콧처럼 사회적으로 배척되는 것”이라고 표현하면서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우리 사회의 보이콧은 일본이다. 정확히는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지만, 해당 조치가 우리 기업에 타격을 입힌다는 점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불매운동(보이콧)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보이콧은 앞서 일본 정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과 독도 관련 이슈로 네 차례 일어났던 불매운동 중 가장 큰 규모로 실제 일본 경제에 일정 정도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불매운동의 여파로 국내 수입맥주시장 1위를 지키던 일본 아사히 맥주는 이번 달 시장 점유율이 기존 18%에서 15%로 줄어들면서 2위로 물러났고, 조만간 3위로 떨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일본 화장품 역시 지난해보다 20%가량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고, 일본 의류기업 유니클로 역시 매출이 30% 이상 감소했다. 또 일본행 관광객이 줄면서 일본 항공권 매출도 전년 대비 38% 감소하면서 일부 일본 현지 관광지에서는 점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일본 제품 보이콧과 관련해 여론은 둘로 나뉜다. 일본이 우리 경쟁의 주축인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 세 개를 콕 집어 공격한 것을 들어 당한 만큼 일본 경제에 타격을 입혀야 한다는 주장과, 상대가 그릇된 방법으로 공격한다고 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옹졸한 처사라는 주장이 맞붙고 있다. 두 의견 모두 법 테두리 안에서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섣불리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일각에서 불매운동을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 중에는 유명인사도 적지 않은데, 대표 인사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그는 민정수석 재직 당시부터 강한 어조로 일본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는데, 지난 18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일본과 경제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애국이냐 이적이냐”로 극단적 관점을 드러냈고, 지난 20일에는 “(일본 강제징용에 관한 )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매도하는 사람은 마땅히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고 적었고, 21일에는 “(일본이 우리보다 국력이 한 수 위지만 )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고 과격한 표현을 잇달아 드러냈다. 조국 전 수석의 관점대로라면 불매운동을 하는 사람은 애국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적으로 비쳐, “민정수석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동꾼에게나 어울릴법한 언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1965년 이뤄졌던 항일 청구권 협정은 양측 모두에게 꺼림칙한 미완의 협정으로 기억된다. 일본은 1965년 협정으로 한국에 건넨 무상원조 3억달러(당시 환율 1,080억원)를 통해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국가와 별도로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청구권 체결 당시 해당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지만, ‘배상금’도 아닌 ‘독립축하금’이라며 식민 지배에 대한 뉘우침 없이 일본이 건넨 돈을 “(돈만 받을 수 있다면 ) 다른 이름도 좋다”며 받아 챙긴 이전 정부(박정희 정권 )의 경솔함도 지적받고 있다. 당시 돈의 성격과 함께 개인 배상청구권 포함 여부를 분명히 해야 했지만, 우야무야 넘어가면서 결과적으로 해석 논란의 싹을 키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가 편찬한 백서에도 “(한일 청구권 ) 협정에 의해 개인청구권을 일률적으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나, 일본 국내법에 의해 소멸시킨 재산권을 한국민이 주장하기 어려움”이란 내용이 명기돼 국내적으로도 논란을 낳고 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시 지난 26일 공개된 인터넷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제가 감정 이입을 잘한다”며 “(아베 신조 총리 입장에서 볼 때 ) 1965년 박정희 정부 때 어쨌든 도장 찍고 돈까지 받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위안부 합의도 했는데, (한국 정부가 ) 지금 한국 내 일본 기업의 (국내 ) 자산을 동결하고 매각신청을 한다고 하니까 일본 총리로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 일본 총리로서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그것을 무역 규제로 표출한 것은 잘못한 거다. 이런저런 분쟁이 있을 때 믿고 교역하던 것(국가 )을 상대로 중단하면 세계무역은 파탄 난다”며 “한·일 관계는 나빴던 시기보다 좋았던 시기가 더 많았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 같은 방식으로는 (이번 수출 규제 갈등 ) 해결이 안 된다”고 우려를 전했다.

일본 사회학자 오구마 에이지는 책 『일본 양심의 탄생』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피해 배상 소송에서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과 중국인까지 지원했던 아버지 오구마 겐지 변호사의 삶을 조명하면서 “(국가로부터 희생을 강요당한 이에게 합당한 배상을 해야 ) 비로소 일본이라는 국가의 신뢰가 회복된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양심적인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국인 징용피해자에게 배상권이 존재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이 느끼는 반일 감정에 편승하려는 정치인의 강경 발언만 유독 눈에 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 감정적 대응으로 내부 갈등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 갈등마저 상대편 잘못으로 치부하는 감정싸움이 거센 모습이다. 불매운동은 갈등의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성난 민심의 지표에 가깝다. 국민감정에 편승해 감정적인 언사를 내뱉으면 당장 인기를 끌고, 속은 시원할지 모르나 갈등 해결은 요원하다. 불매운동의 옳고 그름에 집중하기보다 이번 갈등의 해결에 집중하는 이성적인 정치인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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