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 같은 日 경제보복에 국민은 100년 전 3.1운동 재현
삼복더위 같은 日 경제보복에 국민은 100년 전 3.1운동 재현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7.2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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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세종시 유니클로 세종점 앞에서 세종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주관으로 열린 '일본 경제보복 규탄!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에서 세종시 시민단체 회원들이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국민적 스트레스가 한여름 불쾌지수처럼 극에 달해 여러 가지 형태의 저항운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 규모가 전국적이어서 100년 전 3.1운동의 재현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 1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겨냥해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하고, 스마트폰과 TV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 것이 발단이었다. 해당 품목은 우리나라가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해 왔으며, 일본 외의 국가에서 수입을 대체할 경우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고 물류비용이 증가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논란이 됐다. 일본 정부는 역사와 통상문제를 연결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2일 아베 신조 총리가 정당 대표 토론회에서 “한국이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우대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지금까지 수출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는 등 정황상 이번 무역규제는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지난해 10월 대법원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판단된다. 

이후 일본은 이에 그치지 않고 경제산업성을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시 통관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안보상 우호 국가)에서 배제하는 ‘수출 무역 관리령 일부 개정안’을 내놓았다. 천여개 품목을 추가로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의미였다. 한국이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catch all) 규제(대량파괴무기 등으로 전용 가능성이 높은 물품을 수출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의 명분이었다. 이후 ‘캐치올’ 규제를 한국이 일본보다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음이 확인됐으나 일본은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러한 일본의 연이은 ‘억지’에 일본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들끓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 고위 인사들의 태도는 불붙은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지난 19일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를 논의할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에 응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날 담화 발표에 앞서 남관표 주일 한국 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항의했고, 남 대사의 말을 끊는 등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다. 또한, 아베 총리는 지난 21일 참의원 선거 개표 방송에서 “한국이 이 전후 체제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한일관계 구축의 기초가 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반하는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유감”이라며 “한국 측이 제대로 답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일련의 사태에 가장 광범위하게 진행된 저항운동은 불매운동이었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보이콧 재팬”이라는 문구가 담긴 사진이 SNS에서 활발하게 공유됐다. 일본 제품과 대체 제품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인 ‘노노재팬’이 한동안 각종 포털의 실시간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 제품이나 콘텐츠를 소개하는 유튜버들은 쏟아지는 비난에 곤욕을 치렀다. 일본 제품을 넘어 일본산 원료를 사용하는 국내 제품 또한 불매운동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원산지가 일본인 제품은 바코드가 ‘45’나 ‘49’로 시작한다”는 정보가 공유됐다. 곡성군에서는 일본여행을 취소하는 사람에게 쌀을 주는 이벤트를 벌였고,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하는 등 전국 지자체도 동참했다.  

불매운동의 효과는 확실했다. 지난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에서 일본 상품 매출이 급감했다. 대표적으로 전월 동기 대비 일본 맥주 매출은 ‘이마트’에서 30.1%, 롯데마트에서 15.1% 편의점 ‘CU’에서 40.1% 감소했다. 의류 회사 ‘유니클로’는 매출이 30%가량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 일부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일본 노선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일부 일본 매체에 따르면 한국 관광객이 급감함에 따라 일본 중소도시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저항은 불매운동만이 아니었다. 지난 19일에는 한 남성이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인도에 승합차를 세운 뒤 차 안에서 스스로 불을 붙여 사망했다. 지난 22일에는 반일행동 부산청년학생 실천단 소속 대학생 여섯 명이 부산 일본영사관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다가 연행됐다. 지난 23일에는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경제보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대사관에 항의문 전달을 시도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노’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프랑스의 사회운동가 스테판 에셀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 『분노하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며 “정치계·경제계·지성계의 책임자들과 구성원 전체는 맡은 바 사명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노’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경제보복 앞에서 국민의 분노는 이미 그 방향을 정했고, 저항운동은 한여름 태양보다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혹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전국적으로 일본에 저항했던 3.1운동이 연상된다는 평이다. 

비록 3.1운동은 실패했지만, 역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 맥은 계속해서 이어져 임시정부 수립으로,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으로 전개돼 결국 독립에 이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니…. 저항운동이 부질없다 있다를 떠나서 100년 전 그날처럼 전 국민이 계속해서 뭉치는 이상 블룸버그통신의 지난 22일 사설 제목처럼 “한국을 상대로 한 아베 신조의 무역전쟁은 가망 없다”(Abe's Trade War With South Korea is Hopeless)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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