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계약직 아나운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신고가 ‘공허’한 이유
MBC 계약직 아나운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신고가 ‘공허’한 이유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7.21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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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난 16일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중구 서울고용청 앞에서 이 법에 근거한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난 16일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중구 서울고용청 앞에서 이 법에 근거한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비정규직. 굳이 정규직으로 일하지 않아도 시간과 업무량을 조정해 사정에 맞게 유동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채용방식이다. 회사는 큰 부담 없이 변화하는 노동력 수요를 적시에 충당할 수 있고, 근로자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 기간, 형태에 맞게 가변적으로 근무할 수 있어 사주와 근로자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는 고용형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금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시간의 여유는 사치로 여겨졌고, 대다수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근무하기 원했다. 오늘날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꿈꾸는 이들이 잠시 머물며 ‘희망고문’ 당하는 기간 정도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해도 노동의 대가를 달리 적용받는다. 봉급, 사내 복지, 성과급은 물론 심할 경우 명절 선물세트에도 차이가 있다. 마치 현대판 신분제처럼 자리해, 대다수 비정규직은 차별받는 열악한 환경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정부는 이런 상황을 포함해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처사를 ‘적폐’로 규정하고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재정했다. 개정법에 따라 ‘직장 내 지위와 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졌다. 법 개정으로 10인 이상 사업체는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징계 등의 내용을 의무적으로 넣어야 하는데, 이를 어길 경우 사업주에게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된다. 또 괴롭힘 신고가 들어올 경우 사측은 반드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조치하면서 가해자에게는 적절한 징계를 내려야 한다. 만일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괴롭힌 가해자가 사업주일 경우에는 징계가 불가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실제로 2016년과 2017년 MBC 계약직 아나운서로 입사한 10명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1호 대상자로 지목받는다. 아나운서 신분임에도 일할 수 없는 현 상황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괴롭힌 가해자가 사측인지라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계약직 아나운서는 방송사주가 정권의 눈치를 보며 일부 방송인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방송계에 파업이 한창이던 2016년과 2017년 MBC에 입사했다. 많은 방송인이 파업에 동참해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이들은 파업인원의 빈자리에서 정규직을 바라며 방송에 임했다. 하지만 2017년 말 해고된 전직 MBC 최승호 PD가 사장으로 복귀하면서 파업인원은 물론, 그 전 사장체제에서 해고됐던 인사들까지 복귀하면서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한직으로 밀려나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에는 계약만료를 통보받기도 했으나,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 근로자 지위 임시 보전 가처분을 받아 현재 간신히 아나운서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사측은 “소송이 끝날 때까지 월급은 지급하겠으나 일거리는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기존 아나운서 사무실이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 방치 수준에 놓여있다. 일감이 주어지지 않고, 사내 네트워크에도 접속할 수 없으며, 정당한 이유 없이 훈련·승진 등에서 배제되는 등의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저촉된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다만 이번 상황은 괴롭히는 주체가 사업주라는 점에서 사업주가 자신을 징계해야 하는데, 그런 ‘셀프 징계’가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피해자에게 불이익 준 것에 따른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연계해볼 수도 있으나, 이는 괴롭힘 신고에 따른 2차 피해가 발생했을 때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장귀연 박사는 책 『비정규직』에서 “고용의 안정이란 삶의 안정을 의미한다. 계속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면 삶의 계획도 세울 수 없고 마음이 항상 불안할 것이다. 비정규직이 바로 이런 상태”라며 “고용이 불안하면 삶 자체가 불안해지고 심신이 피폐해진다”고 말한다.

계약직으로 뽑아 이제 필요 없으니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사측과 정규직이 되겠다는 기대감으로 최선을 다해 일했다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입장이 상충하고 있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계약 해지는 삶을 불안에 요동케 하는 큰 괴롭힘이 분명하지만, 그 괴롭힘을 마땅히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행 중인 해고무효확인소송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그들의 괴로움을 ‘괴롭힘 금지법’이 구제하기 어려운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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