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기 상황’ 한일 무역전쟁 해결책은?… 서희, 원종과 장수왕에게서 힌트를
‘국가 위기 상황’ 한일 무역전쟁 해결책은?… 서희, 원종과 장수왕에게서 힌트를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7.1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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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김현종 2차장.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1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겨냥해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하고, 스마트폰과 TV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2일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시 통관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안보상 우호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도까지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무역전쟁이 안보문제로까지 심화하는 현 상황이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 등 동북아 안보 정세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와 관련해 “최근 한일관계 문제는 경제 영역에 국한된 사안은 아니다”라며 “향후 상황이 전개되고 정부의 방침이 정리되면 정부의 입장을 밝힐 적절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현 상황이 우리나라의 향후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라는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해졌다.  

일부 전문가들도 일본의 이 같은 조치가 단순히 오는 21일 열리는 참의원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아베 정부의 ‘정치쇼’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을 우방국에서 제외하는 등 동북아 국가 간 권력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속셈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결국 우리 정부의 외교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평이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속내를 파악하는 동시에 이번 조치의 부당함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이사회(NSC)는 지난 12일 ‘화이트리스트’에 대해 “한일 양국 4대 수출통제 체제 위반 사례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나 적절한 국제기구에 의뢰하자”고 일본 정부에 제안했다. 또한, 정부가 WTO에 요청함에 따라 오는 23일부터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일반이사회 안건으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상정될 전망이다. 지난 14일에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3박4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고 귀국했다.

정부가 노력하고 있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이럴 때 막연한 미래에 기대기보다는 역사 속 외교전에서 힌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강사 최태성은 책 『역사의 쓸모』에서 “역사는 삶의 해설서와 같다”며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기에 그때마다 막막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역사 속 인물들은 이미 그런 경험을 했다. 그 수많은 사람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어떤 길이 나의 삶을 의미 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일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역사에는 국가 위기상황에서 적의 진의를 간파해 전쟁을 피하고 이득을 얻는 외교 사례가 존재한다. 거란과의 전쟁을 막는 동시에 강동 6주까지 확보한 고려의 서희가 대표적이다. 80만 병사를 이끌고 내려와 당장 항복하라는 협박문을 보낸 거란 장수 소손녕 앞에 나아간 서희는 거란이 정말 싸우고 싶어 하는 나라는 고려가 아닌 송나라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거란의 진의는 거란이 송을 칠 때 후방에서 고려가 송을 지원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었다. 서희는 “거란이 강동 6주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몰아내고 그 땅을 고려에게 준다면 송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오히려 강동 6주를 얻어낸다.

치밀한 정보전을 통해 파악한 역학관계를 외교에 이용한 사례도 있다.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몽골은 1231년 고려에 쳐들어와 40년 이상 싸운다. 이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고려는 항복을 결정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항복을 결정할 당시 몽골의 황제였던 몽케가 죽고 아들들이 권력 투쟁을 시작했다. 고려 입장에서는 항복할 대상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잘못된 대상에게 항복한다면 추후 황제가 된 이에게 미움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고려 원종은 훗날 원나라 황제가 될 쿠빌라이를 찾아가 항복하고,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 되더라도 원의 직할령으로 복속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낸다.    

체면을 잠시 내려놓는 대신 실리를 챙긴 사례도 있다. 바로 5세기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수왕이다. 최태성은 “장수왕이 정말 잘했던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조공을 바치는 일”이라며 “고구려가 그렇게 잘나갈 때인데, 떵떵거리지는 못할망정 주위에 조공을 바쳤다”고 설명했다. 장수왕 때 고구려 옆에는 북위와 북연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망하기 직전 북연의 왕이었던 풍홍이 고구려에 망명을 요청한다. 풍홍을 받아들이게 되면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얻게 되지만, 북위와는 척을 지게 되는 상황. 장수왕은 결국 풍홍을 데려오는 선택을 한다. 이에 북위는 고구려에 전쟁을 선포하는데, 장수왕은 북위에 조공을 바치며 “풍홍이 다시 세력을 얻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내가 막을 테니 나를 믿어라”며 낮은 자세를 취한다. 장수왕은 이런식의 ‘조공’ 외교로 북위와 북연, 송나라 사이에서 전쟁을 피하고 실리를 챙겼다. 최태성은 “만일 이런 일이 지금 일어난다면 ‘장수왕의 굴욕 외교’ ‘국격 없는 나라 망신’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싸우면 이길 수 있는 데 왜 그렇게 낮은 자세를 취하느냐고 비난 일색일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이득을 취하고 손실은 피했다. 체면을 잠시 내려놓은 대신 실속을 챙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현명한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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