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책 속 명문장]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7.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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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성범죄 재판에 관한 최근의 논란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피해자다움이다. 이 용어를 둘러싸고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 첨예한 반목과 이견이 노출되는 것이 다반사인데, 공론장의 한편에서는 성범죄 재판에서 고소인의 피해자다움은 고소인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할 필수적인 고려사항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성범죄 고소인의 피해다움을 묻는 것 자체가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비판은 주로 여성주의 활동가들에 의해 주도됐는데, 한국성폭력연구소 이미경 소장의 다음 인용문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견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피해의 특수성은 간과된 채 획일적으로 요구되는 '피해자다움'은 가장 전형적인 성폭력 2차 피해이다. 특히 성폭력 수사·재판 담당자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통념에 의해 '(보호할 만한) 순수한 피해자상'에 부합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경우 의심하고 비난한다. <17쪽> 

이미경의 다음 서술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시각을 잘 드러낸다.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같은 피해라고 하더라도 각자 다른 피해후유증 및 대응양상을 보인다. 현행법이 피해자들에게 요구하는 '피해자다움'은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형성된 '합리성'이나 '객관성'의 이름으로, 피해자의 경험과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어 결코 객관적일 수 없으며, 무엇보다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97쪽>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변론 전략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다. 고소인의 진술에만 의존해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성범죄 재판에서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의 양산을 막기 위한 필요악이기 때문이다. 거짓된 성범죄 혐의로 엄청난 고통의 나날을 보낸 피해자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범죄 고소인 진술에 대한 신빙성 평가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일 수밖에 없다. (중략) 지난 2000년 에 구성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는 "성폭력 사건의 의미 구성과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인 여성의 주관적 경험에 진실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정의하며 여성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 평가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중략) 실제로 100인 위원회의 활동이 다수의 무고한 '가해자'를 만들어 냈고 그것은 이후 여성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많은 논란과 반성으로 이어졌다. <100~101쪽>

안희정 사건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안희정은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총 10회의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 그리고 강제추행을 범했다. (중략) 여기서 내가 2017년 9월에 주목하는 이유는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에 따르면 김지은은 그 시점 이후 약 4개월 동안 제삼자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를보냈기 대문이다. "지사님 말고는 아무것도 절 위로하지 못하는 것 같다"(2017년 9월 15일) "사장님(안 전 지사를 지칭) 때문에 참는다" "너무 행복하게 일했다"(2017년 11월 24일) "큰 하늘(안 전 지사를 지칭)이 나를 지탱해 주니까 그거 믿고 가면 된다"(2017년 12월 16일) 안희정에 대한 존경, 신뢰, 애착을 드러내는 김지은의 이 메시지가 과연 피해자다운 행동인지에 대해서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 미디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35~136쪽>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최성호 지음 | 필로소픽 펴냄│224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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