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신 찾아 해외여행?... 아는 곳 가야 ‘진짜 휴가’
잃어버린 자신 찾아 해외여행?... 아는 곳 가야 ‘진짜 휴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7.01 10: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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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아 또다시 떠나고 싶어지면 다른 어디도 아닌 뒷마당을 돌아볼 거예요. 거기에 없다면 애초에 잃어버린 적도 없을 테니까요." - 『오즈의 마법사』 중 도로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바쁜 일상에 잃어버린 나 자신의 재발견’을 여행 이유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해야 할 것들’에 치여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억압하며 나 아닌 나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내 역할과 의미가 고정돼 버린 현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의미를 찾겠다는 마음이 대다수 여행자의 속내다.

하지만 여행은 꼭 새롭고 낯선 장소로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한다. 에세이스트 피코 아이어는 책 『여행하지 않을 자유』에서 “집에 가만히 앉아, 내가 본 것들을 오래 지속되는 통찰력에 차곡차곡 담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은 내 것이 된다”며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가는 것보다 더 활기찬 일도 없다”고 말한다. 이어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그 모든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며 “물리적 이동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를 고양시키지 않는다”고 전한다. 새로운 경험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축적된 경험을 통찰하는 시간으로써의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여행은 한가로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다. 장소보다 시간 활용이 여행 성공의 주요 기준이지만, 실제로는 쉴 틈 없이 빽빽하게 짜여진 ‘패키지여행’ 등으로 ‘나도 가봤다’ ‘나도 해봤다’는 위안과 가본 흔적(사진)만 남기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철학자 장 루이 시아니는 책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에서 “오늘날 ‘존재한다’는 말은 ‘활동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광적인 생산과 소비에 함몰된 오늘날의 인류에게 과잉활동은 규범이자 교리가 돼버렸다”며 “모든 것이 과잉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과잉활동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과잉활동은 시간과 공간, 육체와 정신, 욕망에 틀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또 퓰리처상 수상자인 브리짓 슐트는 ‘한가로움’이 없는 이런 강압적인 시간을 책 『타임 푸어』를 통해 ‘오염된 시간’이라고 명명했다.

많은 현대인이 휴식으로서의 여행을 비생산적으로 간주하면서 누군가는 ‘내가 이렇게 놀아도(쉬어도) 되나?’라는 질문에 불안을 넘어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여행은 자꾸 일을 닮아가게 되고, 남들에게 내세울 결과물에 집착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나보다 남의 평가를 중시하게 되면서 내세울 증거(사진·동영상) 마련에 심취해 여행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면서 정작 우리 뇌가 느끼고 기억하는 것은 적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현상을 두고 미국 비평가 수전 손택은 책 『사진에 관하여』에서 “노동 윤리가 냉혹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사진 찍기에 집착한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은 휴가를 가거나 일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데, 사진 촬영을 열심히 하면서 일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고 안심한다.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불안을 잊는 것”이라고 비평한다.

그렇다면 어떤 여행이 바람직한 여행일까? 격하게 쉬는 스트레스 하나 없는 여행이 좋은 여행일까? 문요한 정신과 의사는 책 『여행하는 인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면 ‘아, 편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돌아올 때면 푹 쉬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고 나면 휴식의 에너지는 손에 쥔 모래처럼 흩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휴식은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라며 “자신과 잘 맞고 영혼이 원하는 활동으로 채워진 여행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를테면 책 속에서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저자를 발견해 자기 존중감을 느낄 때, 메말랐던 감성을 자극해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낳는 문학작품을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피코 아이어는 책 『여행하지 않을 자유』에서 “고요는 자원이 충분한 사람들만 탐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자원을 모으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며 “아무 데도 가지 않는 행위는 세상에 등을 돌리고 집안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고 더 깊이 사랑하려는 행위”라고 말한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집 혹은 시원한 동네 도서관, 자주 가는 동네 카페 등에서 책을 읽으며 나 혹은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는 사랑의 행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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