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에서 사랑·존경을 찾다... “난 틀렸으니, 너에게서라도”
‘덕질’에서 사랑·존경을 찾다... “난 틀렸으니, 너에게서라도”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6.30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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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를 기다리며 박수에서 하룻밤을 보낸 성시원(정은지 분). [사진=드라마 응답하라1997]
토니를 기다리며 박수에서 하룻밤을 보낸 성시원(정은지 분). [사진=드라마 응답하라1997]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차라리 암표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BTS가 제 삶의 유일한 낙이거든요.”

두 아이의 엄마인 주부 A씨(40)는 방탄소년단(BTS)의 열혈 팬이다. 학창시절에도 안 해 본 ‘덕질’(좋아하는 연예인에 심취해 그와 관련한 것들을 소비하는 것 )을 중년 가까운 나이에 한다는 것이 남부끄럽긴 하지만, 그런 감정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BTS를 소비할 때만큼은 마치 내가 BTS의 성공에 일조한 것 같은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BTS 굿즈(연예인 또는 영화·애니메이션 등과 관련한 파생 상품 ) 구매에 열을 올리던 A씨는 최근 부산에서 열린 BTS 팬미팅 공연에도 참여하려 했으나, 손 빠른 어린 소녀들에게 밀려서인지 입장권 구매에 실패했다. 마음 같아서는 웃돈을 얹어서라도 표를 구하고 싶었으나, ‘(암표 거래를 막기 위해) 티켓 구매자와 관람자가 동일해야 입장 시킨다’는 주최측의 강경입장에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덕질이 취미생활의 일종으로 여겨지면서 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난 9일 리서치 업체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68.8%가 덕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좋은 취미생활이 될 것 같다’고 응답한 사람도 64.6%에 달했다.

실제로 덕질은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2012년 인기리에 방영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주인공 시원이 아이돌 그룹 'HOT'의 팬으로 아이돌 멤버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Fan+Fiction )을 쓰다가 창작의 재능을 발견하고 작가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 외에도 명문대 철학과에 재학한 가수 신해철을 동경해 철학과에 가더니 박사학위를 따버린 친구, 오빠들(아이돌 멤버 )에게 어울릴만한 패션 구상에 몰두하다 디자이너가 된 친구 등 ‘덕질’이라는 강렬한 열정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바람직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책 『어쩌다 어른』의 저자이자 <중앙일보> 기자인 이영희씨 역시 “내가 기자가 된 것은 순전히 ‘오빠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덕질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폐해도 만만치 않다. 덕질에 돈과 시간, 에너지를 쏟아부어, 그 안에서 성취와 인정 욕구를 충족하려 들면서 정작 실제 본인 삶의 균형은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최근 과거 우상처럼 여겼던 덕질 대상(스타, 아이돌 등 )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저들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다’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성공에서 성취감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런 가운데 때로는 스타는 성장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 괴리감을 느끼면서 스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전달하는 과도한 선물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한 배우의 열혈팬인 30대 가정주부 B씨는 굿즈 구매와 조공(덕질 대상에게 보내는 선물 ) 보내기, 공연 관람 등에 매월 60만원가량을 소비한다. 수입에 비해 과도한 지출에 남편과도 여러 번 다퉜지만, 답답한 가정생활에 유일한 낙이라는 생각에 그 돈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돈 많은 팬들이 수천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선물을 전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인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전직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김동성이 자신에게 연애 감정이 있는 남편이 있는 여성 팬에게 5억5,000만원 상당의 선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세계적인 철학가 알랭 드 보통은 책 『불안』에서 “먹을 곳과 잘 곳이 확보된 뒤에도 사회적 위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면서 “다섯 세대가 쓸 만큼 돈을 축적해도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모으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그들이 돈만큼이나 돈을 버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존경과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돈이 많건, 적건 간에 돈을 벌고 소비하는 주된 이유는 존경과 사랑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과도하게 덕질에 몰입하는 행위, 어찌 보면 존경과 사랑의 결핍을 표출하는 몸부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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