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정한근 “父 정태수 지난해 사망”... 제2의 조희팔 되나?
‘한보’ 정한근 “父 정태수 지난해 사망”... 제2의 조희팔 되나?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6.24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7년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중풍에 따른 전신마비 증세로 서울대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고 병실로 이동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1997년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중풍에 따른 전신마비 증세로 서울대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고 병실로 이동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IMF 국가부도 사태 당시(1997년) 기업 줄도산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한보그룹. 그 핵심인물인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아들 정한근씨가 해외도피 21년 만에 국내로 송환됐다. 정씨의 체포로 ‘한보사태’(권력형 대출비리 사건으로 IMF를 촉발했다고 평가받음 )의 몸통인 정 전 회장의 행방도 덩달아 관심을 받았는데, 이와 관련해 정씨는 “아버지 정 전 회장이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 직접 임종을 지켰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객관적 자료로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정씨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 부자의 해외도피는 21년 전 시작됐다. 정씨는 1997년 1월 한보그룹이 파산하자 남은 회사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 당시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 가스가 보유한 ‘루시아 석유’ 주식 매각자금 322억원을 스위스 은행에 빼돌린 혐의로 1998년 검찰조사를 받던 중 해외로 도주했다. 이후 검찰은 정씨 행방을 뒤쫓았지만, 끝내 찾지 못해 2008년 9월 정씨를 불구속기소 했다. 통상 해외도피자의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만, 정씨가 출국기록을 남기지 않고 밀항한 탓에 공소시효가 정상 적용돼 오는 2023년 시효 만료를 앞둔 상황이었다.

정씨 체포는 2017년 6월 그가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한 언론 보도를 계기로 검찰이 그의 소재파악에 나서면서 이뤄졌다. 정씨는 고교 친구 A씨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중앙아메리카의 벨리즈 시민권자로 위장, 이후 캐나다와 미국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는 자신의 거취를 다룬 방송보도 이후인 2017년 7월 한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하지 않은 에콰도르로 도주했다. 에콰도르는 아직 우리나라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기에 우리 정부의 정씨 신변인도 요청을 거절했으나, 출국 정보를 제공하면서 정씨는 미국 LA로 향하던 중 경유지인 파나마에서 체포됐다.

정씨가 체포되면서 정 전 회장의 행방도 관심을 받았다. 정 전 회장은 1951년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면서 20여년간 전국에 땅을 사들여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했고, 이후 1976년에는 한보주택을 세워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건설·분양해 큰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이후 IMF 사태(1997년)로 회사가 휘청 이는 가운데, 그간 그룹 외형을 키우면서 불법 대출 및 횡령을 일삼은 혐의가 드러나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나 2002년 특별사면(병보석) 됐다. 하지만 2007년 영동대학 재단의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아 재수감될 처지에 놓이면서 정 전 회장은 대장암 치료를 명분 삼아 일본으로 출국, 이후 자취를 감춰 12년째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횡령자금은 도피생활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사망했다는 정씨의 주장과 관련해 정 전 회장이 살아있다면 올해로 94세의 노령인데다, 과거 대장암을 앓았던 병력이 있는 만큼 실제 사망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정씨가 형사적 책임을 아버지에게 떠넘기기 위해 거짓 진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재 검찰은 본격적인 사실관계 파악에 착수한 상황이다.

정 전 회장의 사망설에 의구심이 생기는 이유는 앞서 중국 도피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조희팔 사건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조희팔은 다단계 판매를 통한 5조원의 사기 피해액을 낳은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의 당사자로, 2011년 중국 도피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그를 목격했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면서 위장 사망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앞서 2011년 경찰은 조희팔 가족이 촬영해 제출한 장례식 동영상과 머리카락 등을 토대로 “조희팔이 중국의 한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조희팔이 조선족 조폭 열두명의 보호를 받으며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다. 2011년 조희팔 일당의 부탁으로 조선족 조폭을 고용해 40억원대 ‘배달 사고’를 해결해준 인연으로 아직까지 조희팔 보호 세력과 연락하고 지낸다”는 대구 지역 조직폭력배 출신 인사의 증언과 “경찰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뒤에도 중국에 있는 조희팔 회장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는 밀항 전 조희팔의 보디가드였던 최영만의 증언 등이 나오면서 ‘위장 사망설’이 힘을 얻었다. 경찰 역시 “생활반응(살아서 돌아다닌다는 정보)이 없어 (조희팔이 ) 사망한 것으로 봤다”며 “조희팔이 사망했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고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2016년 검찰 역시 조희팔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 내리면서도 “수사가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단서가 나오면 지속해서 수사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8년 넘게 조희팔의 뒤를 쫓으며 조희팔과 정치계 인사의 유착 의혹, 조희팔 밀항을 해경이 비호했다는 의혹, 조희팔 허위 사망 의혹을 중점 보도한 정희상 시사인 기자는 책 『팩트와 권력』에서 “조희팔이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경찰 발표는 조희팔 가족이 찍어온 장례식 동영상과 위조를 의심받는 사망진단서가 전부”라며 “이 사망진단서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중국 공안 직인조차 없다. 조희팔 유골에 대한 국과수의 DNA 검사에서도 조희팔 유전자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마스터’에서 형사가 아무리 잡으려 애써도 정·재계를 주무르며 경찰을 농락하듯 움직이는 진 회장은 결국 꼬리를 감추고 도망친다”며 “씁쓸함을 안긴 영화처럼 조희팔은 타지 어딘가에서 사치를 누리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조희팔이 해외에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조희팔 생사확인과 색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많은 의문을 남기면서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조희팔의 죽음. 정 전 회장의 죽음 역시 조희팔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경찰의 수사에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