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이 쏘아 올린 ‘김원봉 논란’... 국군의 날도 바뀌나?
文 대통령이 쏘아 올린 ‘김원봉 논란’... 국군의 날도 바뀌나?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6.18 15: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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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추념사 전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현충일 추념사 전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

지난 6일 현충일 기념식에서 전한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가 불러온 이념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한 정권 수립과 6·25 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 의지를 문 대통령이 직접 피력하면서 이념 갈등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의 축사 이후 진보와 보수 진영은 김원봉 서훈 찬반 측으로 나뉘어 열띤 공방을 벌였다. 김원봉 서훈에 찬성하는 일부 항일독립운동단체는 김원봉 서훈 촉구 대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약산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수여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 사흘 만에 6,300명의 동의를 받았다.

반면 서훈 수여를 반대하는 보수 진영에서는 김원봉이 북한에서 요직을 차지, 훈장까지 받은 전력을 거론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10일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 )을 예방해 “6·25 전쟁 남침 주범 중 한 사람인 김원봉이 최근 우리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정말 말이 안 되는 얘기들이 있어서 안타깝다”고 전하며 문 대통령의 발언에 우려를 표했다.

황 대표가 백 장군을 예방한 이유는 백 장군이 1946년 1월 15일 창설된 준군사조직 국방경비대의 초기 멤버 중 한명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국군은 국방경비대를 국군의 뿌리로 간주해 왔으나 문 정권 들어 국방부가 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인정하는 내용의 발간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2018 )을 출간한데 이어 문 대통령이 직접 “광복군은 국군의 뿌리”라고 발언하자 황 대표가 견제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또 국방부 발간서가 나올 무렵,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서 백 장군의 전쟁 활약상이 담긴 웹툰이 삭제되면서 불거진 백 장군 업적 축소 논란도 이번 황 대표의 백 장군 예방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여권에서는 광복군 창설일인(1940) 9월 17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 10일 청와대는 뒤늦게 “국가유공자 심사 기준상 김원봉 선생은 서훈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수습에 나섰다. 이로 인해 항일독립운동단체는 서명 운동 계획을 철회했지만,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11월 9일 )을 앞둔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는 오는 27일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혀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김원봉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부분은 해방 이후 그의 행적이다. 의열단을 이끌며 항일운동에 투신한 해방 전 그의 공적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으나, 해방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보수 진영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1948년 월북한 김원봉은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북한 정권 수뇌부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또 6·25 전쟁에서 공훈을 세워 북한 내 최고 상훈에 해당하는 노력훈장을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져 6·25 남침의 주범 중 하나로 지적받기도 했다. 다만 북한 내부 권력투쟁 과정에서 밀려 1958년 숙청당하면서 남한과 북한 모두로부터 외면당했다.

이번 논란을 두고 학계에서는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광복군을 재조명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굳이 북한으로 넘어가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을 현시점에 거론하는 것은 소모적인 정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 모두를 포용해야 할 문 대통령이 논란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비판여론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의 역사의식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본래 역사학도의 길을 가려 했던 문 대통령은 주위의 반대로 법학을 전공하면서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겠다”고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밝힌 바 있다.

유시민 작가는 책 『역사의 역사』에서 “어떤 이유에서 인간이 거의 다 죽고 문명이 모두 폐허가 됐다. 도서관의 책과 인터넷 디지털 정보가 다 없어진 상황에서 긴 세월이 흐른 뒤 후손들이 폐허에서 2010년 한국 언론사의 신문철을 발굴했다. 랑케(역사가)처럼 희귀한 사료를 근거로, 사라져 버린 옛 문명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려는 야심을 품고 역사를 쓴다고 해보자. 그가 쓰는 역사의 내용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는 어느 신문이냐는 것이다. ‘조선일보’인가 ‘한겨레’인가에 따라 미래의 랑케가 쓰는 역사는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영도자’가 되거나 ‘방탕한 독재가’가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라 기록하는 사림이 선택한 사실만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의 투철한 역사적 신념은 존중받을 일이지만, 진영 간 논쟁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굳이 대통령이 직접 견해를 밝히면서 갈등과 분열을 촉발시켰다는 점에는 적잖은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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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2019-06-18 22:47:10
좋은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