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막말에 상처받지 않는 법... “꽃을 부르지 마세요”
악플·막말에 상처받지 않는 법... “꽃을 부르지 마세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6.14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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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XX 새끼” “(누군가의 죽음에) 잘 죽었다” “니 새끼한테 X이나 처먹여라.” 인터넷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악플(악성 댓글)이다. 최근에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징하게 해쳐 먹는다”라거나 대통령에게 “빨갱이”라는 등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게 공개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막말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 막말과 비난이 면(面) 대면(面)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IT 기술의 발달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365일,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와 ‘연결’되면서 이제는 굳이 누군가를 만나지 않더라도 언제든 비판·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무고한 피해자라 할지라도 일단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조리돌림의 대상이 돼, 당하는 쪽은 심한 내적 상처를 입게 되는 형국이다. 지난달에는 남성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에서 청해부대 입항식에서 벌어진 사고로 숨진 최종근 하사를 두고 심각한 인격모독 발언을 내뱉어 유가족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해군 측은 워마드의 행태를 강력 규탄하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에 있다. 

악플과 막말 피해자 중 상당수가 법적 대응에 나서 매일같이 적지 않은 수가 법의 심판을 받지만, 이런 악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설령 법의 처벌을 받는다 해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결국 피해자에게 고통의 무게만 더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악플과 막말을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김춘수 시인이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듯, 악플과 막말이 상처가 되지 않도록 관심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미술심리치료계의 권위자 김선현 교수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은 그 자체로 생겨나는 순수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해석을 거쳐 재창조된 나만의 감각”이라며 “누군가가 내 발을 밟았다면 일차적 감각은 ‘아픔’이다. 그냥 아프고 말면 감정이 되지 않겠지만, ‘왜 저 사람이 내 발을 밟았지? 나를 무시하나?’라는 나만의 해석이 덧붙여지는 순간 ‘기분 나쁘다’는 부정적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재구성된 감각에 의해 우리는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불교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조언을 전한다. ‘두 번째 화살에 맞지 말라’는 것인데 해석하자면 예기치 못하게 마주한 비난을 첫 번째 화살이라고 한다면, 그 화살에 죄책감과 분노를 얹어 더 큰 상처인 두 번째 화살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심리치료 권위자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책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첫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을 깎아내리며 또 다른 상처를 만드는 것(두 번째 화살)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의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은 “내가 당신에게 ‘니그로’(흑인을 비하하는 말)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라는 한 백인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당신이 나를 ‘니그로’라고 부르면 문제는 당신에게 있지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나는 관심을 끊음으로써 문제를 지닌 당신을 혼자 내버려 둘 겁니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무례를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지킨 것이다. 

혹 불가피하게 상처를 입었다면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분노가 상처를 더욱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부처로 여겨지는 베트남의 승려 틱낫한 역시 책 『화』에서 “당신을 화나게 한 상대방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계속 그와 입씨름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불이 붙은 집을 내버려 두고 방화범을 잡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 행동”이라고 조언한다. 

머리 위로 새가 날아다니는 걸 막을 수 없지만, 그 새를 잡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악플과 막말의 홍수를 막는 건 불가항력이지만, 그것들을 상처로 받아들이는 건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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