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체를 고뇌하며
발광체를 고뇌하며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9.06.0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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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나른한 봄날 오후이다. 노랑색으로 온통 점령당한 듯한 어느 집 울타리 곁을 지나칠 때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개나리꽃이 봄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피워내는 샛노란 빛이 참으로 강렬해서다. 그 빛은 봄 졸음에 시달린 나의 망막에 여과 없이 투영됐다. 순간 그 빛에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아득한 어린 날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학교에 갔다. 2교시가 시작되자 선생님 판서(板書)가 흐릿하게 보이더니 눈앞에서 지렁이가 기어가듯 꼬물거렸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 말씀이 귓전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려고 이를 앙다물며 무심코 교실 창밖을 내다봤을 때, 운동장 울타리에 노란 개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개나리꽃이 지닌 노랑색을 보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곧이어 귀가 멍해 왔다. 그리곤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 후 눈을 떠보니 학교 양호실에 내가 뉘어 있었다.  

며칠째 끼니를 거른 채 도시락도 없이 학교를 등교했다가 일어난 일이다. 아버지가 부재중인 집안, 어머니마저 이웃집 일을 하다가 발을 다쳐 몸져눕자 우리 형제들은 며칠째 끼니도 잇지 못했다. 

허기로 인한 빈 뱃속은 어린 몸을 스스로 지탱할 힘조차 앗아갔다. 그때 바라봤던 개나리꽃, 그 진노랑색은 평생 뇌리에 가난을 상징하는 빛으로 남았다.

그토록 평소에 외면했던 노랑색을 최근에 이르러서야 다시금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지난봄 고양시에서 개최된 국제 꽃박람회장에서 일이다. 행사장 안엔 온갖 꽃들이 여러 형태로 전시 됐다. 특히 행사장 곳곳에 피어난 튤립 꽃이 매우 인상적이다. 노랑, 주황, 빨강색, 하양색 등의 튤립 꽃들이 곳곳에 꽃밭 가득 피어있다. 이때 튤립 꽃밭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다말고 무심코 바라본 노랑색 튤립 꽃, 그날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전혀 뱃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모처럼 미세먼지가 걷힌 쾌청한 봄 날씨 덕분인가. 쏟아지는 봄볕 아래 유독 노랑색 튤립 꽃이 싱그럽고 아름다워 한동안 그것에 홀린 듯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그날 튤립이 지닌 노랑색 꽃 빛깔은 지난날 그토록 애써 외면했던 노랑색이 아니었다. 노랑색만 대하면 구토를 일으킬 만큼 질색이었는데 그날은 달랐잖은가. 다시금 눈을 비비고 바라볼 만큼 오히려 노랑색 튤립 꽃은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노랑색 튤립 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내가 이토록 이 꽃에 매료된 것은 어쩌면 봄 햇살 때문인 성싶어서이다.    

어린 날 보아온 개나리꽃이 안겨줬던 이미지인 노랑색이 아닌 것은 꽃 위로 무한정 쏟아지는 봄 햇살 덕분인 게 분명하다. 이로 보아 빛은 사물 모습을 보는 각도에 따라 혹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게 하나 보다. 

색은 빛으로부터 연관을 벗어날 순 없다. 이는 빛이 있어야 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이 있고 그 빛이 사물에 닿아 반사돼 눈을 통해 뇌로 전달돼야 비로소 색을 구별하게 된다고 한다. 빛에 의한 반사로 보이는 색을 색채라 부르는 게 이 때문 아니던가. 또한, 인간 심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게 색채이기도 하다. 건강은 물론 원활한 인간관계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색채는 경제와도 불가분적 관계를 이룬다. 여성 필수품들을 판매하는 매장 안 인테리어를 보랏빛으로 꾸미면 물건들이 잘 팔린다고 한다. 이는 여성들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보라색에 내재돼 있어서인가보다.

노랑색 경우 밝고 긍정적인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색으로써 부정적 생각을 몰아내고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건만 왜? 나는 그동안 노랑색에 대한 트라우마에 몹시 시달려야 했을까? 이는 아마도 심리학적으로 노랑색 원형의 색채 심상이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지난날 겪어온 뼈저린 가난의 기억이 내 안에 노랑색 원형으로 자리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형은 보편적 상징(Universal Symbols)이 아니던가. 

색채를 이루는 것은 빛에 의해서다. 빛 중에 최고의 빛은 태양 빛이다. 태양은 따사롭고 훈훈한 빛을 온 천지에 흩뿌려 생명의 도약과 결실을 돕는다. 그래 태양은 인류로부터 희망을 상징하는 빛으로 숭상받고 있잖은가. 이런 태양 빛을 흠모했기에 모네가 불후의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네는 빛의 변화를 추구하노라 새벽부터 밤까지 같은 주제 작품을 수도 없이 고친 화가로도 유명하다. 모네는 작품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태양 빛의 효용성을 이용했다. 이때 그는 빛과 색을 관찰하기 위해 무려 열다섯 개의 캔버스를  정원에 세워놓고 한꺼번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가로 이 미터에 달하는 ‘수련’ 시리즈 탄생은 이렇듯 모네가 빛에 대한 탐구와 열정으로 빚어낸 걸작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빛을 추구한다면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을 빛나게 하는 발광체(發光體)는 과연 어떤 빛깔이어야 할까? 이제라도 그것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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