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밤낮 안 가리고 술을?" 고전에서 찾아낸 ‘진짜’ 조선시대 이야기
[포토인북] "밤낮 안 가리고 술을?" 고전에서 찾아낸 ‘진짜’ 조선시대 이야기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6.07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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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선조 대 문신 윤근수가 쓴 책 『월정만필』에 따르면 조선시대 신숙주는 단종복위운동 사건 직후 단종비 정순왕후를 첩으로 달라고 했다. 조선 중기 문신 이기가 쓴 『송와잡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경복궁을 약탈하고 불태운 것은 왜군이 먼저가 아니었다.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자 백성들이 몰려나와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역사는 실록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실록은 현전하는 사료들 가운데 가장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한계도 분명하다. 왕과 그 주변 관료들을 주로 다루며, 사관 개인의 견해나 그가 속한 당파의 입장이 반영된다. <매일경제> 등에 역사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저자는 『죽창한화』 『연려실기술』 『석담일기』 등 실록 밖의 흥미로운 야사들을 통해 정사가 말하지 않는, 어쩌면 더욱 진실일 수도 있는 조선시대 사회상을 설명한다. 

[사진= 생각정거장]

신윤복, ‘거문고줄 고루는 여인’. 기생은 춤, 노래, 풍류 등으로 주연석의 흥을 돋우는 직업이다. 천민이지만 시와 글에 능해 지식인으로 대접받는 특이한 계층이었다. <125쪽>

[사진= 생각정거장]

단원, ‘풍속도첩’ 중 ‘점심’.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우리는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끼만 먹었다. 이덕무의 『양엽기』는 한 사람이 하루에 먹는 식사량을 거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사람이 아침과 저녁에 각 다섯 홉을 먹는다면 합해서 1되(1.8리터)가 된다. 한 달이면 서 말이고 일년이면 서른여섯 말(649리터)이 된다. 이익의 『성호사설』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난한데도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식사량이 많았다고 증언한다. 유구국 사람은 조선 사람에게 ”당신 나라 사람들은 항상 큰 사발에 밥을 퍼서 쇠숟가락으로 푹푹 떠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는가“라고 비웃기도 한다. <314~315쪽>

[사진= 생각정거장]

작자미상, 풍속화. 조선시대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 관리들은 아침식사 전 술을 마시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조선의 제9대 왕 성종도 술을 즐기고 놀기를 좋아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차천로의 『오산설림초고』에 따르면, 성종은 주로 독한 소주를 마셨다. 성종은 술로 인한 비사가 유독 많다. <316~317쪽>

[사진= 생각정거장]

김홍도, ‘평안감사향연도’ 중 ‘월야선유도’. 평안도 관찰사의 부임환영 잔치가 사치스럽기 이를 데 없다. 잔치비용은 결국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다. <353쪽>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배한철 지음│생각정거장 펴냄│440쪽│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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