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생 상생 그리고 기생충
[칼럼] 공생 상생 그리고 기생충
  • 독서신문
  • 승인 2019.06.07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재홍 발행인
방재홍 발행인

[독서신문] 영화 ‘기생충’이 화제다. 칸 영화제 대상 격인 황금종려상을 받아 더욱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웃기지만 서글픈 백수가족,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절묘한 대비, 반전을 거듭하는 중후반부, 그리고 감독 특유의 코믹과 서스펜스가 가히 ‘예술’이다.

주인공 송강호 식구 넷은 박 사장 집에 줄줄이 일자리를 얻는다. 범죄에 가까운 네 식구의 척척 잘 짜진 공모에는 능숙한 거짓말과 잘 훈련된 언변 등이 동원된다. 이들은 계획 없이 살아가는 반지하 인생의 하층민이다. 그러나 박 사장 저택 지하에는 또 다른 하층민이….

주인공 기택(송강호) 식구는 박 사장의 기생충이라는 설정이다. 박 사장 집 지하 식구 또한 기생충이다. 대척점에 있는 극빈과 극부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한국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그러면서 빈부문제를 사회이슈화하기는커녕 코믹하게 처리하는가 하면 부자에 기생해 살아가는 빈자의 오를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부자가 벌을 받든가 암에 걸리든가 해 상대적 저열한 쾌감을 빈자에게 선사하는 ‘미덕’은 찾을 수 없다.

영화는 ‘기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관계성을 전제하고 있다. 그 관계성에는 좋고 나쁨이 공존하고 있다. 공생이 좋은 의미의 본보기요 기생이 나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 경우 기생‘충’이 아닌 기생‘인’이 된다.

영화 얘기를 현실에 옮겨보자. 사람이 살면서 늘 공생과 상생의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기생‘인’이 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쉽게 말해 ‘기생충’. 정치인이 국민과 공생만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측면에선 여론에 기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지역 유권자와 한마음으로 같은 길을 걷는다고 누가 생각할까. 당리당략만 내세우는 게 바로 당에 ‘기생’한다는 증거다. 노조가 진정 노조원의 이익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나. 어떤 세력에 휘둘리기 일쑤인 것을 보면 노조 집행부는 그 세력에 ‘기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가족 관계에서도 기생이 있다. 다 큰 자녀가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결혼도 안 하고(못하고) 부모 신세 지는 게 바로 이런 경우다. 좋게 말해 캥거루족이다. 자립이라는 냉정한 잣대를 댄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젊은이들은 이 반대 경우를 들어 늙은 부모가 ‘기생’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겠다.

언론은 어떤가. 팩트에 기생하고 특종 기생충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지만 시류에 기생하고 광고 기생충이라는 오명을 듣는 일도 있으니 낯이 뜨겁다.

6월 호국의 달. 죽음으로 이 땅을 지킨 수많은 용사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무명용사의 ‘기생충’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