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과 ‘계획’ 의미 알면 섬뜩해지는 ‘현실반영’ 영화 ‘기생충’ 해석
‘수석’과 ‘계획’ 의미 알면 섬뜩해지는 ‘현실반영’ 영화 ‘기생충’ 해석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6.0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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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배우 송강호가 수석을 들고 있는 장면 [사진= 네이버영화]

*이 기사의 일부가 작품의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지난달 30일 국내 개봉함과 동시에 각 포털 사이트에는 ‘기생충 해석’이라는 검색어가 인기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각종 매체들은 영화 ‘기생충’의 해석을 쏟아내기 바빴다. 제각기 다른 해석 중에 가장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해석은 영화 전반부에 등장하는 ‘수석’과 ‘계획’이라는 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해석이었다.

영화 ‘기생충’은 기택(송강호)과 그의 가족 기우(기택의 아들, 최우식), 기정(기택의 딸, 주연), 문광(기택의 아내, 이정은)이 신분을 속여 각각 박사장(이선균)네 가족의 운전기사(기택), 과외선생(기우와 기정), 집사(문광)로 들어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기택네 가족 모두가 박사장네로 들어갈 수 있었던 계기는 영화 초반부에 기우의 친구 민혁(박서준)이 자신이 과외를 맡았던 박사장의 딸을 기우에게 부탁하면서부터다.      

과외를 대신해줄 것을 부탁하러 기택네 집을 찾은 민혁이 ‘수석’을 선물하는데 일부 평론가들에 따르면, 이 ‘수석’이 영화 ‘기생충’을 해석하는 키(Key)다. 평론가들의 해석에 따르면, ‘수석’은 ‘계획’과 연결된다. 구독자 33만명을 보유한 인기 영화평론 유튜버 ‘백수골방’은 “(수석은) 거대한 자연의 형상을 집안에 옮겨놓고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장식물의 역할”이라며 “모든 것이 무계획적인 자연의 형상을, 아주 계획적으로 인간의 통제와 소유권 아래에 두기 위함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백수골방’은 “(영화 속) 수석은 인간이 ‘계획적으로’ 어떤 행위를 해나가는 것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민혁이 ‘수석’을 가져온 뒤로 기택네 가족은 박사장네로 침투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영화 속 ‘계획’은 하류층인 기택네 가족이 하류층에서 상류층으로의 ‘신분상승을 도모할 수 있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아들 기우는 자신의 학력을 위조해 박사장네 딸의 과외선생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 뒤 아버지 기택에게 “아버지, 저는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내년에 이 대학 꼭 갈 거예요”라고 말하고, 기택은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말한다.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간 기우가 학력을 위조해 고액과외를 하는 ‘계획’을 통해 주로 상류층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 외에도 하류층인 기택네 가족은 철저한 ‘계획’ 아래 박사장네 집에 차례차례 침투해 들어가며 하류층에서 상류층으로 이동을 시도한다. 

그러나 술술 풀릴 것만 같았던 기택네 가족의 ‘신분상승 계획’은 영화가 절정으로 흐르며 좌절되고 만다. 쏟아지는 비에 상류층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기택네 가족이 사는 반지하로 유입되고, 기택네 가족은 졸지에 피난민이 된다. “아버지, 계획이 뭐예요? 계획 있다면서요?”라고 묻는 아들 기우에게 아버지 기택은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체념한다. 심지어 영화의 절정부에서는 기우의 머리가 ‘계획’을 상징하는 ‘수석’으로 내리쳐지는 등 계층이동을 위한 기택네 가족의 ‘계획’은 전부 무산된다. 

이렇게 영화는 결국 하류층이 중류층이나 상류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져 있는 사회에 대한, 즉 아무리 노력해도 하류층은 다른 계층으로 올라가기 힘든 사회에 대한 메타포가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수석’과 ‘계획’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해석에 공감을 한 이유는, 현실도 그다지 영화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실을 나타내는 통계치는 영화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경제주평, 조세재정정책의 소득재분배효과 국제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빈곤탈출율(균등화 중위 소득 50% 미만이 정부의 조세정책을 통해 저소득층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율)은 19.5%로 OECD 28개국 중 가장 낮다. 또한, 지난 4월 OECD가 발표한 ‘사회이동을 촉진하는 법’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하위 10% 가구에 속한 자녀가 중산층에 도달하기까지 5세대가 걸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칸영화제가 열린 프랑스를 포함해 독일과 칠레, 아르헨티나가 6세대, 헝가리가 7세대였고, OECD 평균은 4.5세대이니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세계적인 공감을 일으킨 것도 이러한 현실 때문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러한 현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빈곤한 가정의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의 계층이동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게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지난해 중학교 1~3학년 학생 391명의 장래희망 직업군 1, 2순위를 조사한 결과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하는 가구의 소득) 60% 이하인 저소득층 학생 가운데 고위 공무원과 기업 임원 등 ‘공공 및 기업 고위직’을 희망 직업군 1순위로 꼽은 비율은 1.15%였다. 반면, 저소득층이 아닌 학생 가운데 이 직업군을 꼽은 비율은 4.81%로 4배가 넘었다. 또한,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률 및 행정 전문직’을 1순위로 꼽은 비율도 저소득층 학생이 1.2%인 반면, 저소득층이 아닌 학생은 7.85%였다. 

“영화가 끝나고 내 몸에서도 기택네 가족과 같은 반지하 냄새가 나는지 확인했다.” “내가 기생충이었다니.” 최근 트위터 상에 넘쳐나는 ‘기생충 보고’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트윗들에는 대부분 이와 비슷한 말이 적혀있다. 유독 이 영화는 관객에게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가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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