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타인과의 공존이 어려워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이 많아질수록, 개인의 힘만으로는 변화를 일으키기가 힘들수록, 한 사회의 불안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불안의 시대, 방향을 잃고 의지할 곳을 찾아 헤매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시대가 어렵다 보니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무언가 아는 체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언제든 믿고 따를 모양새다. 이는 곧 한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불안감의 현상이다. 이럴 때 나타나는 것이 노련한 데마고그(Demagogue)다. 간편한 해결책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자신을 지도자로 선택하도록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이를 과학 용어로는 '단순화'라고 한다. <15쪽>
한때 병원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 보존하는 신성한 장소로서 한 도시 혹은 한 지역의 자랑이었다. 그 중심에는 물론 인간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은 오히려 병원의 방해 요소처럼 여겨진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독에서는 병원의 이윤 추구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병원은 하나의 사업체로서 이윤 극대화의 결정체가 됐다.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사업가들이 병원의 키를 쥐고, 수술로 수익을 남긴 병원장은 인센티브를 받으며, 공공의료기관들 역시 병원의 경제적 이익을 환자의 안위보다 우선하는 운영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49쪽>
모든 인간은 존엄성을 지닌 채 태어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아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 또한 모든 아이들은 고유의 방식으로, 저마다 다른 크기의 소리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배가 고프다거나 기저귀를 갈아달라거나 하는 요구를 할 때는 물론이고, 혼자 남아 돌봄을 받지 못하거나, 구석에 버려져 있을 때도 그렇다. (중략)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아이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이 사그라지고 아이와의 삶이 한 가정의 구태의연한 일상으로 자리 잡고 나면, 보호자의 애정 어린 눈빛 속에서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거나 존재만으로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행운은 더이상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자신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어도 그것을 느낄 뿐, 왜 그래야 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151쪽>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트 휘터 지음 | 박여명 옮김 | 인플루엔셜 펴냄│232쪽│1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