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그림 속 사람은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포토인북] 그림 속 사람은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6.05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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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누군가가 책 읽고 있는 그림을 볼때면 문득 궁금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하고 말이다. 

이 책은 '그림 속 저 책은 과연 무슨 책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대중에게 친숙한 화가 에드워드 호퍼, 르네 마그리트, 빈센트 반 고흐,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비롯해 국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작품을 다수 소개한다. 그림에 깃들어 있을 법한 이야기, 화가와 그림 속 인물이 나누었을 속 깊은 대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삶 등이 책에 담겼다. 

사서(司書). 주세페 아르침볼도, 1566년경, 스웨덴 스코클로스테르 성 [사진=도서출판 한겨레출판] 
사서(司書). 주세페 아르침볼도, 1566년경, 스웨덴 스코클로스테르 성 [사진=도서출판 한겨레출판] 

책과 사람이 하나되는 서인합일(書人合一)을 통해 '호모 비블리쿠스'라는 새로운 종, 곧 서인종(書人種)이 탄생했다. 아르침볼도가 묘사한 서인종은 신성로마제국 황실 사서이자 페르디난트 1세 황제의 공식 역사가인 볼프강 라지우스(1514~1565)다. 그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문헌을 모아들였는데, 때로는 훔치기까지 하며 왕성한 수집욕을 내비쳤다. 머리 윗부분에만 책이 펼쳐진 것과 관련해 저자는 "머리에 놓인 책을 눈으로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책만 좋아하고 책을 잃지 않는 사람을 놀려 먹는 뜻일 수 있다"고 말한다. 

카를로스 데 비아나 왕자. 호세 모레노 카르보네로, 1881년, 스페인 프라도국립미술관. [사진=도서출판 한겨레출판] 
카를로스 데 비아나 왕자. 호세 모레노 카르보네로, 1881년, 스페인 프라도국립미술관. [사진=도서출판 한겨레출판]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데 비아나 왕자(1421~1461)는 아라곤 왕국 후안 2세의 아들이다. 하지만 부왕은 왕후가 1441년 세상을 떠난 뒤 아들 카를로스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부자 사이는 아버지가 두 번째 부인 후아나 엔리케즈를 맞아들이면서 더욱 악화됐다. 후안 2세가 이복동생 페르난도를 총애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급기야 내전까지 벌어졌다. 결과는 카를로스의 패배. 포로가 된 카를로스는 왕위에 오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석방된다. 그는 1461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떴는데, 후아나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림은 카를로스가 내전에서 패한 뒤 나폴리 수도원에 은거하던 시절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힘든 시기였지만 학문을 애호하는 인물답게 책을 쥐어들고 있는데, 저자는 "철학에 식견을 지닌 그였으니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했다. 

독서하는 여인. 윤덕희, 18세기, 대한민국 서울대학교박물관. [사진=도서출판 한겨레출판] 
독서하는 여인. 윤덕희, 18세기, 대한민국 서울대학교박물관. [사진=도서출판 한겨레출판] 

여인의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마음을 격동케하는 내용의 책이나 정신의 나태를 꼬집는 책, 새롭고 놀라운 지식으로 독자를 뒤흔드는 책은 아닌 듯하다. 온전한 휴식으로서의 독서,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나마 멀어져 긴장을 풀게 해주는 독서일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정신의 날을 벼리느 것만이 독서의 효용이나 목적이 아니다. 마음의 결을 한가로이 고르는 것 역시, 아니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기쁨일 수 있다"고 말한다. 18세기 조선에서는 세책(필사한 책을 돈 받고 대여) 소설이 유행했는데, 주로 사대부 집안 여성들이 한글로 번역돼 쓰인 소설 읽기에 탐닉했다. 

창작의 고통.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 1892년. [사진=도서출판 한겨레출판]
창작의 고통.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 1892년. [사진=도서출판 한겨레출판]

그림이라면 첫 획, 글이라면 첫 문장, 첫 줄이 문제다. 글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창작의 고통이다. 위 그림 역시 창작의 고통을 그려내고 있다. 해당 작품은 소설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부친인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의 그림이다. 레오니드는 1887년 뮌헨왕립미술학교를 마친 뒤 귀국해 1889년 전업 화가 생활을 시작하며 로사 카우프만과 결혼했다. 이후 모스크바에 정착하면서 장남 보리스를 낳았다. 보리스는 회고록에서 "나는 아버지가 시간 압박을 얼마나 크게 받았는지 기억한다. (하지만) 잡지는 발행이 지연되는 법이 없었다"며 화가 아버지의 창작의 고통을 술회한 바 있다.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292쪽│1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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