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한겨울은 매서운 한파와 얼어붙은 땅이 걷기를 꺼리게 만들고, 한여름은 가만있기도 땀이 나는 푹푹 찌는 날씨가 걷기를 망설이게 한다. 일상의 시름을 잠시 제쳐두고 걸음에 몸을 맡기기에는 신록이 푸름을 뽐내는 5월이 제격이다. 여름이 기지개를 켜며 산책을 재촉하는 5월,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산사 걷기 길을 추천한다.
이번 주말 추천 산책 코스는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한 1,000년 고찰 통도사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부처의 유골)를 보관하고 있어 불보(佛寶·귀중한 보배 )사찰이라고도 불린다. 통도사란 이름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사찰이 자리한 양산시 영축산과 부처가 설법을 전한 인도의 영축산이 통한다’는 의미, ‘승려가 되려면 통도사의 금강계단(국보 제290호 )을 통해야 한다’는 의미, ‘모든 진리를 통달해 중생을 제도(濟道·도를 깨우치기를 돕는다)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은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는 부처가 살아있다는 뜻에서 불상을 모시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에는 ‘산사(山寺 ),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사찰 6곳(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기도 했다.
통도사 앞으로 이어진 1km 남짓한 진입로는 수백 년 된 금강송 수천 그루가 거대한 솔숲으로 이루고 있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라는 이름처럼 바람이 춤을 추고 서늘한 소나무가 관람객을 반기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속세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은 모습으로 자리한다. 통도사 인근의 산책로는 통도사 매표소부터 통도사 무풍한솔로 ~ 통도사 부도전 ~ 통도사 ~ 안양암 ~ 수도암 ~ 취운선원까지 7.2km가량 이어진 코스를 추천한다. 완주하는 데 총 3시간가량이 소요되며 해당 코스를 통하면 솔향을 가득 내뿜는 숲길을 걸어 통도사 계곡과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영축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무풍한송로의 끝에 이르면 통도사 건립에 돈을 보탠 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바위 조각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조선 후기 대표적 화가 김홍도와 그의 스승 김응환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은 남자보다는 여자 이름이 다수인데,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 지역 기생들이 시주를 많이 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대웅전 뒤편에는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깃든 연못 ‘구룡지(九龍池 )’가 위치한다. 646년 신라 자장율사가 연못에 살던 용 아홉 마리를 내쫓고 한 마리만 남긴 채 연못을 메워 통도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찰 내부를 살펴본 후에는 안양암과 수도암, 취운선원숲길로 이어진 산길을 오르면 되는데,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으니 식수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산책을 마치고 허기졌다면 통도사 인근에서 메밀소바를 즐겨도 좋고, 산길을 내려와 양산 남부시장에서 울통치킨을 먹어도 좋다. 울통치킨은 40년 역사를 지닌 지역 내에서 알아주는 맛집으로 농장에서 직거래한 신선한 생닭을 그 자리에서 손질해 바로 튀겨 제공한다. 메뉴는 프라이드 반, 양념 반이 유명한데, 바삭한 식감이 일품이라는 평이다. 통도사 인근 메밀소바 집은 SBS ‘생활의 달인’에 소개되면서 손님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 긴 줄을 기다리기 싫다면 남부시장의 태평양분식과 양산칼국수, 미미분식에서 국수를 맛보는 것도 좋겠다.
삽량(양산의 옛 이름 )빵 역시 놓쳐서는 안 될 꼭 먹어봐야 할 양산의 명물이다. 경남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입상하면서 유명세를 얻게 된 삽량빵은 경남권에서 으뜸으로 쳐주던 양산의 달걀을 특화해서 만든 빵으로, 친환경에서 자란 닭이 낳은 신선한 유정란으로 만들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4만4,000원을 내면 삽량빵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1시간 30분 소요 )도 가능하다.
걷기 예찬론자 하정우는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걸으면서 고민을 이어갈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걷는 동안에는 어쩐지 그 고민의 무게가 좀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불면증이나 한밤의 우울을 모르고 어디서나 꿀잠 자는 나의 비결은 걷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주말 세계적인 유산을 배경삼아 산책을 즐기고 꿀잠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