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유람선 사고가 더욱 안타깝고 쓸쓸한 이유는…
헝가리 유람선 사고가 더욱 안타깝고 쓸쓸한 이유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5.30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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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29일(현지시각) 한국인 33명과 현지인 1명을 태우고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 한국인 7명 사망, 19명 실종.”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일어난 사고가 전 국민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유독 묻히고 있는 다른 사망 사고가 눈에 띈다. 사람의 죽음은 그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유독 크게 알려지는 죽음이 있는 반면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죽음도 있다.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떨어져서 부서지고 으깨진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고 노동을 관리하는 정부관리가 와서 손수건으로 눈물 찍어내는 시늉을 하고 돌아가면, 그다음 날 노동자들은 또 떨어진다.”    

소설가 김훈이 신축공사장에서 추락사하는 노동자가 일년에 270~300명에 달하며,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100여명이 떨어져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지난 14일 <한겨레>에 게재한 칼럼이다. 김훈은 이 칼럼에서 “돈과 기술이 넘쳐나도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바로잡을 능력이 없다”며 “내년에도 또 270~300명이 떨어진다. 이것은 분명하다. 앞선 노동자가 떨어져 죽은 자리에 다른 노동자가 또 올라가서 떨어진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으니, 내년인들 무슨 수가 있겠는가”라고 적었다. 

김훈의 말처럼 매년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추락하고 짓밟히고 사망하며, 잊힌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일 발표한 ‘2018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971명으로, 전년(964명 )보다 일곱명 늘었다. 그 규모는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4.16 세월호 참사의 세배 이상이지만, 김훈의 표현대로 사망한 이들은 ‘낙엽’과 같다. 봄에 싱그러운 새싹으로 돋아나 여름에 신록으로 빛나는 잎사귀는 가을에 단풍이 돼 온 세상을 물들이더니, 겨울에는 나무가 겨울을 나야 한다는 이유로 떨어지고, 밟혀, 어딘가로 쓸려간다. 결국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곧 잊힐 사망이라서 그런지 노동자 사망에 대한 대우는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 노동자 김용균씨가 사망한 후로 여론이 들끓어 산업안전보건법(‘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하 산안법 )이 28년 만에 개정 됐고,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도 구성이 됐다. 그러나 김용균법이 제정된 후에도 수십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사망했으며 최근 특조위의 활동이 회사 측의 방해로 중단된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청년·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파기를 규탄하고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을 촉구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달 입법 예고된 김용균법 하위법령들 역시 구멍이 많아 충분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용균법의 취지는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을 제한하는 등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것이었지만, 정작 외주화로 인한 재해 가능성이 높은 업무는 빠졌으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기계에 대한 원청의 안전 점검 책임도 제외됐다. 또한, 정부가 시행령에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확대했다고 밝혔지만, 사업주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막는 조항도 없다. 제2, 제3의 김용균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훈은 칼럼에서 노동자들이 떨어져 사망하는 이유에 대해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 고공에서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진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며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거나, 추경을 편성하거나, 행정명령을 동원하거나 간에,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층에서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늘 돈 없고 힘없고 줄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오늘날 헝가리 부다페스트 하늘 아래 사망한 여행객들이 지금도 산업현장에서 사망하며, 연일 시위하는 노동자보다 훨씬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가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노동자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이 아니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헝가리에서 사망한 이들의 기사에 달린 무수한 댓글들에 비해, 산업현장에서 죽어간 이들을 위한 기사에 달린 단 몇 개의 댓글들이 참 쓸쓸해 보이는 오늘이다. 

“당신이 만약 편의점에 간다면 주위를 잘 살펴라. 당신 옆의 한 여자가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 그것은 약을 먹기 위함이며 당신 뒤의 남자가 편의점에서 면도날을 살 때, 그것은 손을 긋기 위함이며, 당신 앞의 소년이 휴지를 살 때, 그것은 병든 노모의 밑을 닦기 위함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김애란의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 中) 제2의 김용균을 살리기 위해, 매년 산업현장에서 스러져가는 생명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관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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