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201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은 반 시게루를 수상자로 선정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반 시게루는 지난 20년 간 전 세계의 지해 현장을 돌며 적은 비용으로도 단순하고 위엄 있는 피난처와 공공건물을 지어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도왔다."
저자는 고베 대지진, 타이완 대지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 등 각종 재해 지역을 비롯해 르완다 등의 내전 지역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건축 소재 및 공법 개발에 천착해 왔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인 '종이 건축'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충격적인 고베 대지진은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야기했다. 베트남 난민들이 주로 머무르는 일본 나가타에 있는 다카토리 성당 역시 지진에 붕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한걸음에 현장에 달려간 저자는 성당의 간다 유타카 신부님에게 '종이 건축'을 제안해 승낙을 받았고 기부금 모집에 착수했다.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모금된 기부금 300만엔과 건설 자재 회사들의 자재 무상 제공, 16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의 뜻이 모여 위엄있는 종이 성당이 만들어졌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6월이 지나도록 인근 공원에서 천막생활을 해야 했다. 비가 오면 바닥이 침수되고 날이 좋으면 실내 온도가 40도까지 치솟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저자는 '종이 로그하우스'를 설계에 착수했다. 기초에 모래주머니를 넣은 맥주 상사, 벽에 지관(지름 108밀리미터, 두께 4밀리미터), 천장과 지부에 천막을 사용한 로그하우스와 같은 캐빈을 설계했다. 재료비는 한 채(16제곱미터) 당 약 25만엔으로 조립식·컨테이터 주택과 비교할 때 재료비가 저렴하고 초보자도 쉽게 조립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종이 건축이 재난 지역의 가설 건물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영구적 또는 대규모 건축에도 시도되고 있다. 1993년 2월 종이 건축이 '건축 기준법 38조'를 통과하게 되면서 저자는 거실과 식당, 부엌, 욕실로 이뤄진 '종이 집'을 건축한다. 10미터X10미터 바닥에 지관 100개를 S모양으로 줄지어 놓고, 정사각형 호 안팎에 다양한 공간을 구성했다.
2000년 독일 하노버 엑스포 일본관 역시 종이 건축으로 탄생했다. 일본관 터널 아치의 길이는 약 74미터, 폭 약 35미터, 높이 약 16미터 크기로 만들어졌다.
『행동하는 종이 건축』
반 시게루 지음 | 박재영 옮김 | 민음사 펴냄│232쪽│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