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빨간머리 앤은 어떤 엄마가 되었을까?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빨간머리 앤은 어떤 엄마가 되었을까?
  • 스미레
  • 승인 2019.05.21 16: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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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빨간머리 앤들에게

‘우리 딸은 꼭 빨간머리 앤 같아.’

일기 쓰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그러셨다. 어린 시절 나는 앤처럼 공상하기를 즐기던 아이였다. 총천연색 감정으로 무엇에든 이름과 스토리를 부여하곤 했다. 마당발은 아니지만, 다이애나 같은 한둘의 친한 친구가 있었고, 혈기왕성한 웅변가는 아니지만 소중한 것 앞에선 완고할 줄도 알았다. 앤이 에이번리에 남아 초록 지붕 집, 마릴라와 매튜의 곁을 지키고 싶어 했던 것처럼.  

그토록 공감이 가는 캐릭터였기에 앤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내 삶의 조각 위에 그녀의 모습이 겹쳐지면 즐거웠다. 벚꽃이 만개한 날, 부푼 소매 블라우스를 날이면 어김없이 그녀가 떠올랐다. 자잘한 글씨가 빼곡이 박힌 후편들은 대학 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녀는 그렇게 훌쩍 자라났다. 교생실습 나가던 날, 내게 가장 큰 용기를 준 인물은 다름 아닌 ‘교사가 된 앤’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연애편지를 쓰는 앤의 이야기는 달콤했다. 그런데 앤이 결혼을 한 후로는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결혼과 육아는 내게 너무 먼 이야기였다. 

아쉬운 마음을 책갈피처럼 끼워 넣고 책을 덮었다. 내가 아는 앤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앤은 길버트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다.>

엄마가 되고서야 문득 같은 자리에 선 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앤은 이 일을 잘 해냈을까? 호기심에 검색을 하다가 어떤 이의 블로그에서 ‘앤은 몽상가라서 아이를 잘 돌보지 못 했을 것’ 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상을 보기도 했다. 왜 인지 주눅이 들었다.

평생 호리호리한 소녀일 것 같던 앤은 무려 여섯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어떤 엄마였을까? 걱정 반, 기대 반 두근대는 마음으로 다시 책을 펼쳤다. 

‘어떤 이’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엄마가 된 앤과 그녀의 아이들은 행복했다.

앤에게는 고아라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녀는 한번도 버려진 적 없다는 듯 명랑한 엄마가 되었다. 마릴라와 매튜로부터 받은 따뜻한 사랑 덕분일 테다. 소중한 이들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풍부한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다정을 표했다. 자신의 개성을 토대로 아이 각자의 특별함을 포착하고 응원했다. 겁 많은 아이는 더욱 감싸주고 기운찬 아이는 도리어 북돋아 주었다. 아이들 각각에게 들려줄 이야기 거리를 섬세하게 챙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녀는 능력 있는 엄마라기보단 사랑받는 엄마였다. 

아이들은 생각했다. ‘이토록 좋은 엄마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을거야.’

혹자는 엄마가 되어 차분하고 성숙해진 그녀가 아쉽다고 한다. 이전에 독자들을 끌어당겼던 건 앤의 낭만적인 감성과 4차원 적 공상, 엉뚱한 사건들이었는지도. 하지만 어른, 특히 엄마가 되는 순간 앤을 앤 답게 했던 그 면면은 거추장스런 짐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앤은 교묘히 자신의 것들을 지켜냈다. 변한 것은 그녀가 아닌 환경과 상황이었다. 앤은 그만의 방식으로 자신은 물론 아이들의 결점까지도 이해하고 끌어 안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바꾸거나 버리지 않고 재산삼아 살아내었다.
[앤은 갓난아기 옆자리에 누우며 행복을 느꼈다. 머지않아 곧 다시 전처럼 발걸음도 가볍게 아이들과 함께 돌아다니고, 사랑하고, 가르치고, 위로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작은 기쁨과 슬픔, 싹트기 시작한 희망, 새로이 생겨난 공포, 그 아이들에게는 큰 문제로 여겨지는 하찮은 일, 그 아이들에게는 괴롭고 안타깝게 여겨지는 조그만 마음의 아픔 등을 끊임없이 어머니에게로 가져오리라. 자신은 다시 잉글사이드 생활의 실을 모두 손에 모아 쥐고 그것을 짜서 아름다운 벽걸이로 만드는 것이다.]

엄마가 된 앤의 일상은 평온했고 에피소드는 아이들 중심으로 전개된다. 앤의 삶은 이전만큼 드라마틱하지 않다. 그녀의 감정은 잔잔해졌고 관심은 가족으로 제한된다. 엄마가 된 앤의 이야기가 큰 유명세를 타지 못한 것도 그 까닭일 테다.

더구나 요즘은 앤의 시대와는 또 다른 세상이다. 추구해야 할 재미와 들어야 할 목소리는 늘어간다. 더 주목을 받는 건 실용적이고 적극적인 행복을 전시하는 쪽이다. 

육아도 그렇다. 특히 ‘보편’이 모토인 육아 세계에서, 내밀한 몽상가의 육아와 행복은 변수이자 예외처럼 느껴졌다. 표표하고 은밀한,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마음이 가라앉을 때면 나는 앤의 목소리를 듣는다.  

저자 몽고메리가 아이를 키우는 앤의 삶에 다름아닌 ‘행복한 나날’이라는 제목을 붙여준 데는 이유가 있다. 앤은 여섯 아이를 키우는 소란 속에도 아름다움은 있으며, 행복은 어디에나 흐른다고 말한다. 가족의 목소리, 돋아나는 잎사귀, 낯선 이가 보인 작은 친절에도 삶의 반짝임은 숨어있다. 우리의 인생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다이애나에게 앤은 말한다. ”나라면 그런 일로 걱정하지 않겠어. 또 다른 생각에 빠지면 그런 건 잊어버리고 마니까. 전쟁은 과거의 것인걸, 뭐.“ 생각으로 생각을 잊는다. 참 그녀다운 마음 정화 법이다.

앤은 생각에 빠져드는 시간이 동력이 됨을 알려주었다. 외부에 남아 ‘엄마’로서 현존하는 일, 그 자체가 버거운 나에게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가장 나다운 행복이자 보상이다. 

몽상에 잠길 때마다 들던 ‘쓸 데 없는 짓’이라는 자책이 녹아 내린다. 
[아이가 여섯이나 되는데도 여전히 젊디젊은 눈으로 꿈꾸듯 잔디밭을 바라보던 앤은 은은한 달빛을 받은 어린 롬바르디 포플러만큼 요정 같아 보이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내면이 있다는 것, 뻔한 일상 속에서도 꿈에 젖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모은 사소한 조각들로 행복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 나 같은 이가 받은 최고의 축복일 테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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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름 2019-05-24 13:06:42
개인적으로 가디언지에서 Margaret Atwood의 서평이 참 마음에 드는데 이 기사와 함께 참고해보시길..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08/mar/29/fiction.margaretatwood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8110487391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