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비밀
출세의 비밀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9.05.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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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여자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맞는 성싶다.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조에서도 지난 일들을 반추하곤 한다. 이런 효용성을 지닌 노래를 들은 것은 얼마 전 일이다. 모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학창 시절을 주제로 한 노래를 가수들이 출연하여 불렀다. 이때 반세기 훨씬 이전에 작사, 작곡한 노래도 불리었다. ‘소녀의 꿈’이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이 노래는 비록 대중가요지만 시적(詩的)인 가사와 경쾌한 리듬이 참으로 예술적이다. 그 당시 어찌 이리 아름다운 가사와 곡을 지어냈단 말인가. 

돌이켜보니 지난날 이 곡을 부르며 꿈을 키워왔던 기억이 새롭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언젠가는 꿈을 꼭 이루리라는 각오를 새삼스레 다지기도 했었다. 사람마다 꿈은 제각기 다르다. 철부지 때는 정치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 꿈을 반드시 이루어 빈자들과 약자들의 눈물을 진정 가슴으로 닦아주는 국정(國政)을 펼치고 싶었다.

훗날 성장해서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불후의 명작을 쓰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하층민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다양성을 실감 나게 표현한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성취를 닮고 싶었다.

아쉽게도 위에 열거한 꿈들은 그 무엇 하나도 여태 이루어내지 못했다. 결혼해 아내, 어머니,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늘 최선을 다하느라 나의 꿈을 이룰 엄두도 못 냈다. 어느 땐 이러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시간이 흐를수록 막중해 버겁기조차 하였다. 심신에서 쉽사리 벗을 수 없는 갑옷으로 작용해 점차적으로 옥죄어 오기도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전념할 수 없었던 것은 나에게 덧입혀진 견고한 갑옷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미흡하다. 요즘 유리 천장이 사라진 추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발목을 잡는 굴레는 주위에 무수히 잔존해 있다.

가부장 주의를 탈피하려는 젊은 남성들에 반해 중장년 남성들은 아직도 권위주의에 익숙하다. 하기야 세계 속담을 살펴보면 이런 형국은 비단 우리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내가 무슨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과 그릇된 규범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를 바가 없어 못내 이 점이 안타깝다. 여성을 인격체로 바라보는 게 아닌 남성의 종속물로 치부하는 삐뚤어진 관념은 프랑스 작가 마담 드 세비뉴(Madame de Sévigné) 가 17세기에 표현한 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열등한 자의 콧대를 꺾어놓는 일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하다.” 이 말은, “나쁜 가정은 물을 긷고 땔감을 마련하도록 당신을 내보낸다네”라는 남자의 불평을 담은 르완다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속담은 남성 우월주의의 극치다. 만일 남편이 아내 대신 집안일을 하겠다고 용인해 버리면 남자는 아내의 포로가 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로 보아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강압적 규범 및 규칙을 깨뜨리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는 단초다. 

여성은 남성을 사랑할 때 품격을 논하지만 반면 남성은 외모 때문에 여성을 사랑한다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말에 여성들이 현혹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평생을 미(美)의 노예로 살법한 여성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여성의 지혜로운 각성(覺醒)으로 말미암아 남성의 구미(口味)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 추세다. 바짝 마른 바비 인형 같은 몸매가 아닌 에너지가 넘치고 발랄한 건강미를 최고의 미로 간주하는 게 그것이요, 성형술로 꾸며진 판박이 미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게 그것이다.

이뿐 만 아니라 남성에게 전적 의존하던 삶의 방식도 과감히 벗어났다. 요즘 여성들은 스스로 홀로서기가 정립돼 일부 여성들은 남성 없이도 혼자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런 세태이다 보니 배우자의 사회적 신분 여하에 따라 자신의 행복이 저울질당하던 지난날의 여성들 처지가 아니다. 오죽하면 젊은이들이 비혼(非婚)자가 늘고 있을까.

남녀 모두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기에 이런 사회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대적 현상에서 남녀가 행복해지는 일은 상호보족작용(相互補足作用)에 의해서다. 

소소한 일이지만 아내는 남편이 직장, 사회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함께 공감하며 위무해주고 남편은 아내의 가사도 도와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도 엄연히 한 인간으로서 인격체라는 것을 가정과 사회가 제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잖는가. 여성의 행복이 남성의 사회적 성공을 주도(主導)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부와 명예를 얻기 전, 가정에서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제가(齊家)도 제대로 못 하면서 어찌 출세를 꿈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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儉乭 2019-05-10 15:15:56
잘 읽었습니다 남성들 정신차리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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