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가장은 ‘내개비’ 고독사는 ‘증가’?
어버이날, 가장은 ‘내개비’ 고독사는 ‘증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5.0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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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어버이날을 맞아 고독사, 특히 남성의 고독사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유독 쓸쓸하게 느껴진다.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김도읍 의원(자유한국당 )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무연고 사망자는 8,173명에 달하며 매년 그 수치가 증가하고 있다. 연령별로는 70세 이상이 28.4%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60대(23.7% ), 50대(22.6% ), 40대(9.6% ), 40세 미만(3.4% )이 이었다. 다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독사하는 사람 중에는 특히 ‘남성’이 많았다. 

김 의원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며 “장기 경기 침체로 인해 가족 붕괴가 늘고 부모세대는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가장이 붕괴되는 가정, 그런데 그 원인은 단지 경제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내개비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사라져주는 게 자식을 위한 행동이다.”
“내개비가 준 생일 용돈 4분의 1을 적금에 넣었다. 통장만이 나를 구원하리라.”
“내개비 죽으면 좋겠다. 만수르님 내개비 해주세요.” 
“내개비가 무슨 얘기하면 속 쓰려서 개비스콘(제산제의 일종 ) 먹어야 해.”

최근 각종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내개비’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보인다. ‘내개비’란 ‘내 아버지’라는 단어가 ‘내 애비’로 줄고, ‘내 애비’가 변형돼 만들어진 저속한 표현이다. 주로 자녀들, 특히 여성인 자녀들 사이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낸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지난해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여성인권 신장 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가부장제에 대한 반감이 가장을 향해 표출된 것이라고 본다. 이 역시 어버이날을 맞는 오늘 씁쓸할 수밖에 없다. 

EBS ‘가족 쇼크’ 제작팀은 책 『가족 쇼크』(2015년 출간 )에서 이러한 가장 문제에 대해 가족 관계 안에 존재하는 확실한 ‘위계질서’를 지적하며 “배려와 절제를 기본으로 하는 타인과의 관계와는 달리 ‘가족’ 안에서는 구성원들에게 이타주의와 희생을 강요한다”며 “그 과정에서 친밀함을 무기로 상대를 억압하거나 과도한 책임감을 부여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제작팀은 “한계 설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에서 제 역할을 못 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그 안에 계속 머물기가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굳어진 ‘위계질서’ 하에서 가정 권력의 중심에 있는 가장은 밉상(미운 짓을 하거나 밉게 생긴 사람 )이 되기 십상이다. 지난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통계청의 ‘2014년 생활시간’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부부의 시간 배분’ 보고서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기준으로 아내가 남편보다 주중 가사시간이 7.4배, 주중 육아시간은 3.5배 더 많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이하 상담소 )가 같은 달 발표한 ‘2018년 가정폭력행위자 상담 통계’에 따르면 상담소가 전국 법원 등지에서 상담위탁을 받은 가정폭력 행위자 324명 중 256명(79% )이 남성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가정에서 밉상이며 ‘내개비’로 불리는 가장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시선도 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돈벌이에 정신을 쏟다보면 자연히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는 책 『아버지를 위한 변명』에서 “나를 버려 자식 세대의 풍요를 보장해야 했던 아버지들은 서운함과 비통함을 감춘 채, 은근히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자식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라며 “세대 교체의 주역이자 승자는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식들이다. 아버지의 희생은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가정의 달이다. EBS ‘가족 쇼크’ 제작팀은 4.16 세월호 참사 뒤 남은 가족들을 취재하며 가족의 본질을 되돌아봤다. 제작팀은 가족을 ▲언제 어디서든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 ▲서로를 가장 오래 기억해줄 사람 ▲뼛속 깊이 후회하는 사람 ▲작은 것조차 고마워하는 사람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함께 견디며 힘이 돼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평소에는 갈등하더라도 헤어지게 되면 정작 서로가 서로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어버이날인 오늘, 집안의 가장은 ‘밉상’일 수 있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녀들은 집안의 가장을 ‘내개비’로 부르기 전에 한 번쯤은 가장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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