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일제강점기 일제에 부역한 문인들은 많았지만, 우리나라 친일문인들은 이 부역에 대해서 처벌받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나치에 협력한 문학·예술인을 예외 없이 숙청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이 당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죄가 결코 작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저자 장호철은 “중등학교에서 삼십 년 넘게 문학을 가르쳤지만 정작 ‘친일문학’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을 시작해 친일문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역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남겨진 그들의 모습은 어떤지를 살핀다.
경기 남양주 봉선사(奉先寺)에 있는 춘원 이광수 기념비. 이광수는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돼 버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지만, 일본인이 될 수 없었다. 1945년 그의 ‘천황폐하’가 무조건 항복했을 때 그는 해방 조국의 민족 반역자로 역사 앞에 서야 했다. 그는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해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했다. 1949년 2월 7일 이광수는 반민특위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지만, 병보석으로 석방된 뒤 그해 8월 불기소 처분된다. <36~38쪽>
서울 어린이대공원 숲속의무대와 식물원 사이에 세워져 있는 김동인상과 김동인문학비. 원래 사직공원에 있던 것을 이전했다. 단편소설 「감자」로 알려진 김동인은 일제에 협력하는 글쓰기에 있어서 다른 친일문인들과 다르지 않은 활동을 벌였다. ‘일장기’를 ‘광명의 원천인 태양의 단순 간결한 표시’라고 찬양하는가 하면, ‘내선일체’와 ‘동조동근론’에 적극 부응하는 글을 썼다. <54쪽>
지난 2001년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선운분교 터에 세워진 미당시문학관. 교과서마다 다투어 그의 시를 싣고, 지역의 나이 지긋한 시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추천을 받았을 정도로 현대 국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당 서정주. 서정주는 조선 병사의 죽음을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한 영광스러운 자기희생인 양 노래했다. 그는 자살특공대원의 죽음을 ‘우리의 자랑’이라 미화하고 그의 죽음이 우리 산천을 향기롭게 했다고 찬양했다. 그는 자신의 부역 행위에 대해 어떠한 반성의 뜻도 표하지 않았다. <145~148쪽>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에 세워졌다가 2013년 시민사회의 항의로 석인리 생가터로 옮겨진 이무영선생문학비. 이무영은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부역 작가 가운데 가장 정력적으로 친일문학을 생산한 작가다. 그는 꾸준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문학 작품을 통해 식량 증산 등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선전·선동했다. 친일작가들 가운데 그만큼 꾸준히 작품을 통해 일제의 식민 정책에 협조한 이는 많지 않다. <170~171쪽>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장호철 지음│인문서원 펴냄│432쪽│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