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유현준 건축가 “서점은 숲과 가장 비슷한 실내 공간”
[특별 인터뷰] 유현준 건축가 “서점은 숲과 가장 비슷한 실내 공간”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5.03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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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인문건축가 유현준(유현준건축사무소 소장 ).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예능프로 ‘알쓸신잡2’에 출연해 인지도를 한껏 높인 건축계 셀럽 유현준의 이름 앞에는 ‘인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본인이 생각하는 인문이란 ‘문사철’(문학·역사·철학 )이라며 ‘인문건축가’란 표현을 부담스러워하지만, 그의 첫 에세이집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라는 공간에는 인문학적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 난다.

유 소장의 신간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의 화제는 ‘공간’이다. 유 소장은 삶의 일부를 이뤘던, 삶에 영향을 미쳤던 공간을 소환해 그에 담긴 감정과 추억을 술회한다. 유 소장은 “일생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사람이 만들어지듯 공간도 사람을 만든다. 이 책은 나를 만든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반백의 나이에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이유는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나를 더 들여다보기 위함도 있다. 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실제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은 크고 작은 수많은 공간으로 이뤄졌다. 생명이 태동하는 모태도, 어머니의 아늑한 품안도, 연인의 향긋한 품속도, 생을 마치고 육신을 누이는 흙구덩이도 모두 공간이다. 생명과 죽음은 거부할 수 없는 수동적 공간을 부르지만, 삶의 과정에서 이뤄지는 매번의 선택은 저마다의 추억과 감정을 품게 하는 자발적 공간으로 자리하기도 하다.

지금껏 공간을 만들면서 누군가에게 특별한 감정을 선사해 온 유 소장을 오늘에 이르게 한 공간은 무엇일까? 그 안에서 어떤 의미와 맥락이 존재할까? 시원한 통유리로 상쾌한 느낌을 더한 논현동 유현준건축사 사무실 1층에서 유 소장을 마주했다.

[사진=wikimedia commons]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 [사진=wikimedia commons]

- 일기를 써내려가듯 공간을 소재로 자신의 삶과 생각을 책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에 담았다. 책에 소개된 공간 파편의 종합체인 유현준을 실제 건축물에 빗대어 소개한다면?

나는 내 자신이 필립 존슨이 설계한 글래스하우스 같다고 생각한다. 글래스하우스는 투명한 유리로 안이 들여다보이고 화장실만 동그랗게 불투명하게 돼 있다. 나는 그렇게 안이 들여다보이는 사람 같다. 가급적이면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숨기는 게 아예 없진 않지만 최대한 솔직 하려고 노력한다. 솔직한 만큼 자유로워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본래 내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인식되면 그게 내 자유를 구속하는 것 같다. 사실 이번에 책을 쓴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친한 친구에게나 할 법한 개인적인 일들을 많이 썼는데, ‘유현준 교수는 이런 사람일 것 같아’ 하고 오해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니까 그런 환상을 깨기 위한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강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강해지고 약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약해지는 느낌이 든다.

- 미국 유학 시절 우연히 눈 마주친 흑인이 거칠게 말하며 노려봤다는 책 내용이 있다. 그때도 강하게 대처했나?

(웃음 ) 오~ 정말 그때는 강하게 대처 못 하겠더라. 그냥 눈을 깔았다. 잘못하면 칼 맞을 것 같았다.

- 책 출간과 잦은 방송출연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요즘 일상은 인생에 어떤 공간으로 기록되고 있나?

요즘에는 여러 곳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내 사무실에서도 일하지만 CJ 라이브시티라는 테마파크의 마스터 아키텍터(책임 건축가)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일산의 CJ 라이브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서울과 일산을 오가며 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최근에는 내 사무실과 CJ 라이브시티 사무실 그리고 차, 이렇게 세 공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 홍익대학교 교수직은 잠시 내려놓고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강연도 하고 있긴 한데 다 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차 내부 공간에도 변화를 주는 편인가?

아니다. 나는 차는 꾸미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동차와 라면은 손을 대면 안 된다’ 그게 내 철학이다. 전문가들이 고민 고민하며 예산에 맞춰 심사숙고해서 만든 결정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점을 존중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 케이스도 안 씌운다. 이걸 만드신 분이 0.1mm를 줄이기 위해 엄청 고생을 하면서 그립감과 여러 가지를 고민했을 텐데 거기에 핸드폰 케이스를 끼우는 건 실례라고 생각한다.

- 건축학은 오차 없이 숫자가 딱 맞아떨어져야 할 것만 같은 이과 과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소장 책에서는 공간의 의미를 짚어내는 인문학의 향기가 느껴진다.

내가 아는 인문학은 문사철(문학·역사·철학 )이기에 이런 표현이 조금 부담스럽긴 한데 ‘사람 냄새나는 건축’이란 의미라면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실 건물은 사람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는 만들 수가 없다. 어떤 건물을 설계하든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 시점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를 생각하면서 디자인 한다. 특별히 설계를 하면서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갖게 될 추억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어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편이다.

- 공간은 강압적이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넛지’ 효과를 선사하는 힘을 지닌 듯하다. 혹시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 중 공간의 변화(건축)로 해결 가능한 것들이 있을까?

많다. 사실 내가 쓰는 책 대부분이 그런 내용이다. 사람 간 계층 간 갈등의 가장 큰 이유는 공짜로 머무는 공간이 없어서다. 카페를 예로 들자면 돈 많은 사람은 스타벅스 가고 돈 없는 사람은 빽다방 가다보니 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한 장소에서 같은 추억을 가질 확률이 점점 줄어든다. 그런 이유에서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원과 벤치, 도서관 등 공짜로 머무를 실외/실내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10분 이내에 있는 곳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 모습이다.

또 스마트한 고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30층 주상복합 아파트는 고밀화된 공간이지만 서로 소통이 거의 없다. 집에 들어갈 때 차 타고 지하 주차장에 주차한 후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끝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모여 살긴 하지만 시너지 효과가 전혀 없는 거다. 서로 소통하도록 테라스도 많아야 하고 길 가는 사람과 소통하도록 1층을 개방해 벤치와 공원을 마련해야 한다. 아파트 담장을 허물고 도시 경계를 없애는 공간 구조 변화가 우리 사회를 더 화목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실제로 서울시가 담장 허물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혹시 해당 프로젝트에도 관여했나?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내 주장과 서울시 기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는지 내 칼럼을 보고 서울시에서 연락이 온 적은 있다. 모 칼럼에서 지하철역 그리고 1.5㎞ 사이에 공원이 있으면 걷고 싶은 거리가 만들어진다는 원리에 따라 서울을 한 바퀴 도는 지하철 2호선 역과 역 사이에 공원을 만들자는 주장을 한 바 있는데, 어느 날 서울시 부시장이 연락해 와 “내 주장이 서울시 기조와 맞다”고 하더라. 워낙 큰 프로젝트라 일단 도시에서 한강으로 나가는 길 몇 곳에 관한 용역을 받아 작업 중에 있다.

이때 굉장히 놀랐다. 건축가는 그림과 공간 이런 것으로만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글이 힘을 합칠 수 있는 동지를 모으는 링크가 된다는 점에서 놀랐다. 또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데 글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 지금까지 다섯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고 칼럼 연재도 계속하고 있다.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난 글쓰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했던 사람이다. 일기조차 쓰지 않았다. 첫 글쓰기는 2005년도인데, 당시 (홍익대 )학교에 있으면서 사무실을 열었는데 일이 별로 없었다. 용돈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원고 하나 써달라고 해서 거절할까 하다가 쓴 기억이 있다. 삼성그룹 내 웹진인가에 게재되는 ‘인테리어 동향’에 관한 글이었는데 20만원 준다기에 “네 쓸게요”하고 썼다. 또 친구가 자신이 관여하는 잡지에 건축물에 관한 글 좀 써달라고, 15만원 준다고 해서 쓴 것이 계기가 됐다. 건설기술인협회의 사보인가에 한 달에 한 번씩 열두 번 기고한 글을 모아 책을 냈는데 그게 『현대 건축의 흐름』이란 책이다. 결국 다 돈 때문에 책을 내거나 원고를 썼다.

-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추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 우리나라는 비슷한 풍경으로 획일화된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정말 심각하게 획일화돼 있다. 걱정스러울 정도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그나마 나는 1층집, 2층집, 12층 아파트에 번갈아 가며 살아봤지만 우리 애만 보더라도 거의 아파트에서만 생활했다. 획일화된 주거 공간에서 자라 다양성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공간 획일화의 심각한 문제점은 사람들이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게 하고 가치관을 정량화한다는 점이다. 집이 다 비슷하다 보니 집 가치기준이 집값밖에 안 남는다.

획일화는 가치관의 정량화를 낳아 집값, 성적, 연봉, 외모 등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게 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점점 불행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40억짜리 타워팰리스에 살아도 나는 작지만 빗소리 들을 수 있는 마당 있는 우리 집이 좋아’라는 자신만의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다양성이 사라진 만큼 나만의 가치가 없어지고 그만큼 자존감도 하락하게 된거다. 이건 내가 책을 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획일화된 도시 환경 속에서도 개인별로 각기 다른 가치가 담긴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런 개인별 공간에 얽힌 추억과 감정이 하나의 별이 되고 별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다. 똑같은 도시에 사는 것 같지만 도시에서 내가 경험하고 찾아낸 공간과 독자 하나하나가 찾아낸 경험이 다르다. 그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 획일화된 공간 속에서 나만의 가치가 담긴 공간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간의 가치는 굳이 자신이 소유한 집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내 경우에는 자주 가는 도산공원의 어느 곳일 수도 있고 자주 가는 빵집일 수도 있다. 또 동네 어느 후미진 곳일 수도 있다. 나만의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서울은 굉장히 좋은 도시다. 요즘 을지로나 익선동 뒷골목을 탐방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아파트나 원룸과 다른 분위기가 많다 보니 그런 곳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수집하는 것 같다.

- 책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신이 맘대로 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날 아이들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하고 어떻게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요즘 아이들은 시간이 없다. 저도 두 아들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됐는데, 보면 안타깝다.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환경에서 사는 건 확실하다. 깨끗하고 잘살게 됐는데 문제는 이 아이들이 즐길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으니 나만의 공간을 못 만든다. 그러니 아이들은 점점 피폐해진다. 일단 애들에게 시간을 좀 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 두 아들이 있다고 했는데? 시간을 주는지?

고3과 중3 아들이 있는데, 자녀 교육이 혼자만의 교육 철학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내와 합의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보통 아빠보다 엄마가 학업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나. “내려놓으라고”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하더라. 답이 없다. 아이 인생이 걸려서 그런지 고집을 꺾지 않는다.

- 우리나라 학교를 교도소와 비교하며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고칠 수 있는데 안 고치는 게 학교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는 세금 엄청 걷어 돈도 많은데 그걸 학교 건축에 투자하지 않는다. 학교는 지난 100년간 바뀐 게 없다. 아이들이 교도소 같은 환경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너무 한심하다. 앞서 획일화가 사회문제를 많이 일으킨다고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건축이다. 학교 건축을 보면 왜 저런 곳에 집어넣어 놓고 공부만 시키는지 생각하면 화가 난다. 미국의 한 교육학자가 오늘날의 교육 현실에 대해 “19세기 건물에 20세기 선생님,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는데 오늘날 현실을 아주 잘 요약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선생님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좋은 방법은 덜 가르치는 것이다. 자연을 느낄 수 있게 시간을 주고 공간을 다채롭게 해 야외 공간을 즐길 수 있게 하면 된다.

자연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변화하는 세상은 예측불가하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교육은 변화에 잘 적응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인데, 문제는 환경 자체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교실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나. 또 모든 것을 책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우리가 존경하는 성인이나 어마어마한 크리에이터들은 다 책이 많지 않은 시절에 태어난 사람이 많다. 소크라테스보다 내가 읽은 책이 더 많을 것 같다. 아마 내가 예수님보다도 더 많이 읽었을 거다. 그렇다고 내가 더 훌륭한 인간이 돼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정작 읽어야 할 책은 안 읽고 문제집만 푼다. 왜 내 인생을 다른 놈이 낸 문제를 풀면서 살아야 하나. 아이들의 젊음이 너무 아깝다.

- 옥상 문을 개방해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위험하진 않을까?

옥상을 개방해서 애들이 담배 피우고 나쁜 짓 할 것 같으면 CCTV 달면 된다. 떨어져 죽을 것 같으면 유리로 건축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럴 돈이 없으면 교무실을 4층으로 옮겨라. 교무실이 1층이니 아이들이 나가지를 못한다. 나는 높은 선생님들은 높은 곳에 있고 1층은 아이들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문도 바닥까지 더 내려 정원이 더 많이 보이게 하고 폴딩도어(접이식 문)로 만들어서 날씨 좋으면 문 열고 꽃냄새 맡으며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닭장 같은 학교에 보내놓고 엄마들은 폴딩도어 열린 카페에 앉아 방과 후에 아이들을 어떻게 학원 뺑뺑이 돌릴지 고민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 그런 생각이 적용된 학교가 있나?

직접 디자인한 학교가 세종시에 지어질 예정이다. 현재 학교 두 곳을 작업했는데 마스터 아키텍터로 참여한 세종시의 6-4프로젝트가 그중 하나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같이 있는 곳인데, 스머프 마을을 생각하고 만들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긴 했지만, 80%정도는 성공했다고 본다. 곧 착공할 예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화성시에 있는 송산중학교다. 주택만한 교실과 그 앞에 각기 다른 모양의 마당이 있게 조성할 계획이다.

구상했던 것들이 실현되는 과정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게 건축하는 맛인 것 같다. 100%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정도는 되는 것 같다.

- 책에서 “속도에 따라 같은 공간도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사고가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조언을 전한다면?

혼자서 멈추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약간 혜민스님 같은 얘기인데,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좀 멈출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일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하는데, 명상도 그중 하나다. 아무 생각을 안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은 바빠서 못하지만 예전에 새벽기도를 간적이 있는데, 가서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명상을 했다.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거다. 어두컴컴한 데서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있으면 마치 컴퓨터 하드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 의식적으로 정리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이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다. 해보면 마음이 정리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책에 보면 우산과 2초 텐트(원터치 텐트 )가 자주 언급된다. 혹시 이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는지?

나만의 공간이 도시 속에서 만들어지는 우산을 정말 좋아한다. 우산을 쓰면 우산 안에는 비가 안 내리는 명확한 벽이 하나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공공 공간인 길거리는 사람들과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 충돌되는데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있노라면 그곳은 완전히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여름철 비 오는 날 양말 젖을 일 없이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텐트 역시 비슷한 류의 돔 공간으로 누울 수 있는 곳이다. 야외에서 누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데 한강시민공원에서 누워서 천장을 보면 무슨 성당의 돔 공간을 보는 느낌이 든다.

- 공공장소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맞다. 야외 공간은 대부분 공적 공간인데 그 공간에 사적인 공간을 만드는 장치다. 나는 항상 이 도시에 사적인 외부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 마당 있는 집에 살거나 남들이 내려다보지 못하는 테라스 있는 집에 산다면 굳이 우산이나 텐트가 필요 없을 수 있지만 우산과 2초 텐트는 공공 공간에서 나만의 공간을 얻는 좋은 도구다.

- 공간 전문가 관점에서 책에 다양한 장소를 소개했는데, 혹시 추천하는 데이트 코스가 있는지?

2초 텐트 치고 한강시민공원에서 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웃음 ) 신사역에서 내려 가로수길을 쭉 걸어 내려가서 한강시민공원 편의점에 들려 컵라면을 먹고 잠수교로 걸어가 해질녘 무지개분수를 보며 맥주 한 캔을 마시고 귀가하는 거다. 나는 도시의 번잡함도 또 등잔 밑 공간(조용한 나만의 공간 )을 좋아하는 데 위 코스에 그런 것들이 다 들어있다. 가로수길의 화려한 모습을 보다가 조금만 걸어가면 조용한 시민공원이 나온다. 한강시민공원은 서울에서 지대가 가장 낮은 곳으로, 자연이 두드러져 보이는 곳이다. 천천히 걷기에도 좋고 그렇게 넓은 수(水 )공간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이 없다. 또 잠원동으로 걸어가면 갈대숲이 있는데 그곳을 관통하면 마치 강화도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대학교 시절 연애를 못 해봤다. 유학 가서 몇 번 사귀어보고 이후 선을 봐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기 때문에 연애 시절이 길지 않았지만, 현재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내버스 여행을 추천한다. 애인과 함께 한 번도 타지 않았던 버스의 제일 뒷좌석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30~40분 정도 가면 아마 생전 못 가본 동네에 가보지 않을까. 그럼 거기 내려서 동네 먹자골목도 가보고 구경하다 집에 가면된다. 서울 웬만한 곳은 지하철도 잘 깔려 있어 집에도 빨리 갈 수 있다.

- 서점을 ‘배려’가 있는 공간 ‘자기 존중’이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책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이다. 혹 사람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공간 설계의 묘수가 있을지?

공짜로 머무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100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든 교보문고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공짜로 앉을 수 있는 곳이 그런 서점들이다. 그래서 그런 공간을 많이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다 돈이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쇼핑몰 같은 곳에 서점이 들어오면 임대료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점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숲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장에 책이 꽂혀있는 것을 보면 마치 나무가 꽂혀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실 종이가 나무로 만들어지니 숲과 제일 비슷한 실내공간은 서점이라든지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오프라인에서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누워서도 책을 볼 수도 있고, 비스듬히 앉아서도 볼 수 있고, 서서도 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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