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2017년 봄, 책을 집필하던 시기에 탈진실만큼 뜨거운 화제는 없었다. 신문을 펴거나 TV를 틀어도, 식당에 가거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도 탈진실 얘기가 나왔다. 이러한 분위기는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도전이 되기도 했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채로 논쟁이 오가고 있는 새로운 소재를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중략 ) 어떤 사람들은 탈진실이 정말 새로운 개념이냐고 의문을 품기도 한다. 탈진실은 그저 ‘프로파간다’와 같은 말 아닌가? ‘대안적 사실’이라고 부르는 대신 그냥 ‘거짓’이라고 하면 안 될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물론 오늘날 상황과 유사한 역사적 선례가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탈진실을 이미 존재하는 다른 개념으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경험적인 믿음을 형성하는 데에 사실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은 적어도 미국 정치 무대 기준으로는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진실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는 존재했다. 하지만 현실을 정치적 상황에 끼워 맞추기 위해 그런 위기를 대놓고 전략처럼 이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탈진실 문제가 심각한 진짜 이유는 단지 진실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탈진실이 정치적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매커니즘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진실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정치적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4~6쪽>
오늘날 ‘사실’과 ‘거짓’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사람들은 추측을 내놓지만 입증책임을 지지는 않고 있다. 게다가 2016년에 브렉시트 투표나 미국 대선에서 난무한 노골적인 거짓말들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당시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조차 자신이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이유는 선거가 조작됐기 때문이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마당에, 사실이나 진실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16쪽>
‘옥스포드 영어사전’에서는 탈진실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포스트트루스’를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이때 접두사 ‘포스트’는 시간 순서상 진실 ‘이후’라는 뜻이 아니라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됐다는 의미다. 탈진실은 철학자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학문적 논쟁거리를 넘어서는 거대한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쪽>
『포스트트루스』
리 매킨타이어 지음│김재경 옮김│두리반 펴냄│295쪽│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