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각’ 블랙코미디 쏟아진다… ‘세월호 망언’은 ‘품격언어상’, 친일파는 현충원에
‘팝콘각’ 블랙코미디 쏟아진다… ‘세월호 망언’은 ‘품격언어상’, 친일파는 현충원에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4.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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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왼쪽)이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제8회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언어상'을 받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세월호 그만 좀 우려 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 오늘 아침 받은 메시지다.”

2014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304명이 사망·실종된 세월호 사건이 5주기를 맞은 16일.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오후 3시 정 의원은 ‘제8회 국회를 빛낸 바른 정치 언어상’에서 ‘품격언어상’을 받았다. 이 상은 국회에서 품격있는 언어 토양을 마련하고자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 학회에서 2010년부터 제정한 상이다. 

이별의 아픔이 아직 아물지 않은 유족을 대상으로 막말을 한 사람에게 주어진 ‘품격언어상’.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언짢은 일이지만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이 ‘블랙코미디’의 요소를 완벽하게 갖췄기 때문이리라. 

코미디의 하위 장르인 ‘블랙 코미디’는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고 그 해설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를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아이러니한 상황이란 대개 암울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한다. 

그 역사를 보자면, ‘블랙코미디’라는 말은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의 책 『블랙 유머 선집』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7년 코미디언이자 작가 유병재가 출간한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로 인해 ‘블랙코미디’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유병재는 이 책에서 ‘블랙 코미디’에 대해 “즐거움이라는 한 가지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는 코미디”라며 “내가 생각하는 블랙코미디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코미디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말로 쉽게 바꾸면 ‘웃픈’(웃기면서 슬픈) 농담쯤 되려나”라고 덧붙이며 그 예로 “내가 구정에 죽어야 느이들이 제사 지내기 수월헐 텐디”라는 어린 시절 동네 할아버지가 즐겨 했다는 농담을 들었다.

그러나 블랙코미디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가 아니라 주로 현실정치와 연관돼 등장한다. 일례로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명 코미디언이자 인기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을 맡은 배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주말에 예정된 우크라이나 대선 2차 결선 투표에 대해 키예프국제사회학연구소가 1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2%가 정치 신인인 질렌스키에게, 25.4%가 재선에 도전하는 포로센코 대통령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웃픈’ 선택인 것이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제8회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언어상'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제8회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언어상'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최근에만 ‘블랙 코미디’ 같은 일이 꽤 많이 보였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 친일파 63명이 묻혀있다. 앞서 친일파의 국립묘지 묘를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을 대표로 지난해 8월 발의됐지만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반면, 일제강점기 의열단 등으로 맹활약하며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은 현상금이 걸렸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의 서훈에 대해서는 지난 10일 김진태·정태옥·성일종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의원의 공동주최로 ‘사회주의자 서훈 이대로 좋은가’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한 김원봉이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어째 현충원에 묻힌 나라 팔아먹은 친일파보다 약산에게 적용되는 정치적 잣대가 훨씬 가혹한 느낌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한 한국당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가 2달 넘게 미뤄지고 있는 상황도 ‘웃프’다. 한국당 윤리위원회는 지난 2월 14일 5.18광주민주화운동 폄훼 3인방 중 한 명인 이종명 의원을 당 제명 조치했지만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지난 2월 27일 열린 전당대회 후보자로 출마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유예한 바 있다. 이후 김영종 당 윤리위원장이 사임하며 한 달 넘게 윤리위가 가동되지 않다가 8일에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정기용 변호사를 윤리위원장으로 임명하고 “5.18징계는 절차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극우파의 눈치를 본다는 말이 나온다. 

이 외에도 ‘버닝썬 게이트’라고 불리는 유흥업소와 경찰의 유착, 정·재계 인물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장자연 사건, 김학의 별장 성접대 의혹 등 굵직한 사건들이 로버트 할리, 황하나, 박유천 등의 연예계 마약 의혹에 쉽게 덮여버리니 ‘블랙 코미디’의 현실판인 셈이다.

사족으로, 유병재의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를 인용하자면, 이 기사에 반응하는 ‘블랙코미디언’들의 답변은 아마 “이거 저희 잘못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해왔습니다”일 것이다. 우리도 블랙코미디로 받아치자. “참 편하게 산다. 너는. 아니다 싶으면 농담이라 하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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