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자보
[칼럼] 대자보
  • 독서신문
  • 승인 2019.04.0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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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방재홍 발행인

[독서신문] 대자보(大字報)는 ‘표현의 자유를 향한 가시 돋친 시대정신’이다. 때로는 분노 공유의 장(場)이 되고 때로는 궐기 촉구의 서(書)가 된다. 결사체의 항전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70~80년대 대학가의 대자보는 반독재 결기로 가득했고 압제에 저항하는 청춘의 목소리는 피울음 같았다. 끈질긴 생명력은 이른바 ‘운동’의 중심 매체가 되면서 민주화 불씨 노릇을 했다. 쉽게 말해 ‘대학생 민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대자보를 쓰는 주인공들의 진퇴가 있듯이 대자보도 생성과 소멸을 겪는다. 대자보 주인공들이 졸업하고 민주화 기운이 성숙하며 투쟁 대상이 사라진 탓에 자연스럽게 대자보는 대학가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런 대자보가 다시 등장했다. 최근 서울 등 전국 대학가에 ‘김정은 서신’이라는 제목 아래 붙었다. ‘남조선 체제를 전복하자’며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 탈원전,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과 무관한 ‘전대협’이 자신들이 한 일이라고 SNS를 통해 밝혔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이윤추구를 박살 냈다’라고 현 정부 정책을 정면 공격하면서 ‘최저임금을 높여 고된 노동에 신음하는 청년들을 영원히 쉬게 해줬다’라며 비꼬기도 했다. “전대협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2017년 보수성향의 청년들이 만든 단체”라고 전대협 관계자가 한 언론에 알렸다.

인터넷 댓글은 어떤가. ‘젊은이들이 용감하다. 눈치 보는 늙은이들보다 더 지혜롭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젊은 보수는 깨어나라’ 등이 압도적이다. 대자보를 비판하는 글은 찾기 어려웠다.

대학생 민심은 ‘좌파 꼰대’를 향해서도 날이 서 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모교 커뮤니티에는 이른바 586 선배들에 대한 비판과 성토가 줄을 잇는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현 정권 인사의 이중 잣대를 비난하며 사퇴 과정에서도 끝까지 아내 탓을 하며 자기 잘못은 아니라는 태도가 구질구질하다는 인성에 대한 비판도 따른다.

어떤 이는 ‘기득권 586 남성이 보여준 윤리적 파탄’이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대학 커뮤니티에는 ‘부패한 정권은 많았지만 이만큼 부패함을 지적받아도 꿈쩍도 안 하는 정권은 처음’이라는 글도 실렸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세대가 본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구태를 답습하는 꼴이라는 지적도 많다.

지독한 구직난에 시달리는 20대에게 현 정부는 인기가 없다. 더구나 종교 관련 군 대체복무 판결을 본 군필 청년들은 허망함과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한다. 얼마 전 한 청년이 문 대통령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있던 청년위원회가 사라져 현 정부에선 소통창구가 없어 청년을 위한 정책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그런 정책은 있는지 알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청년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대학생 민심, 2030 민심은 사납다. 온라인 공간을 배설 창구 삼아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 미래가 불투명한 현실에 대한 불만 등을 쏟아놓던 젊은이들이 대자보라는 오프라인으로 무대를 옮기고 있다. 일시적이긴 하겠지만 잠재된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경찰 측 발언은 ‘광화문 네거리에 울려 퍼지는 김정은 찬양가는 그대로 두면서 정부 정책 불만 표현은 처벌하겠다는 거냐’라는 비아냥을 사고 있다. 가뜩이나 젊은이들은 유독 김정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비핵화’의 중대함 보다 남한 측 재산이 북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더 크다. 어른들보다 더 현실적이다. 젊은이들의 현실은 이 정권이 감당하지 않을 ‘미래’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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