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터지는 대한민국 범죄의 뿌리… ‘상품이 된 여성’
시시각각 터지는 대한민국 범죄의 뿌리… ‘상품이 된 여성’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3.29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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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승리, 정준영, 김학의, 장자연… 단 한 달 동안 대한민국에서 불거진 문제만 해도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다. 우리나라를 사건·사고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이 많은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일각에서는 최근 문제가 된 사건·사고들이 공통적으로 ‘여성의 몸’이 마치 상품처럼 격이 낮게 다뤄지는 사회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윤중천의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김학의 별장 성접대·성폭력 사건 피해자 증언 
건설업자 윤중천은 김학의 전 차관 등 고위공직자에게 여성의 몸을 제공해 이권을 취하고 자신이 저지른 불법을 무마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들은 윤중천이 불법으로 촬영한 성관계 영상과 권총 등을 이용한 폭력으로 협박해 저항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쓰여진 것처럼 상세했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배우 윤지오가 한 말 )
배우 故 장자연의 몸도 ‘거래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우 윤지오가 목격했다고 하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는 장자연에게 술자리와 성접대를 강요한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또한 윤씨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 조모씨가 술자리에서 장자연을 성추행한 것을 봤다고 했다.        

“응 여자는? 잘 주는 애들로”
“내가 지금 창녀들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창녀들 두 명 오면 xx가 안내하고 호텔 방까지 잘 갈 수 있게 처리해.” (‘SBS fun E’에 의해 공개된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내용 )
“(여자가 ) 아예 의식이 없었다. 그래서 신고한 거다. 진짜 시체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지난 23일 방송 ‘버닝썬 게이트 그 본질을 묻다’에서 ‘물뽕’ 피해 목격자의 말 )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여성은 VIP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고급 술’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일부 남성들은 운영진의 묵인 하에 여성이 마시는 술에 이른바 ‘물뽕’이라는 약물을 탔다. 물뽕을 마신 여성은 영혼 없는 시체가 됐고, 남성들은 술이 아닌 여성의 ‘몸’을 취하기 위해 ‘버닝썬’을 이용했다. 
 
여성의 인권이 남성과 상품, 그 중간 어디쯤 되는 사회. 지난해 여성 인권 강화를 위해 땡볕에 거리로 뛰쳐나온 여성들의 노력이 무색하다. 우리 사회 만연한 ‘여성 상품화’는 여성인권 운동의 주요 담론이었고, 여성 인권 운동가들이 바꾸고자 했던 사회의 병폐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성인권운동가들은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의 권력 관계에 의해서 상품화된다고 외쳤다. 이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게일 루빈이 그의 논문 「여성 거래」에서 “섹스/젠더 체계가 여성의 거래를 낳는다”며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인 것이 아니라 남성 교환체계 안에서 남성 주체(male giver) 간의 교환 대상인 여성 선물(female gift)이 되면서 여성 젠더로 만들어진다”라고 쓴 것과 궤를 같이한다. 루빈에 따르면 여성의 몸이 거래의 대상이 돼온 역사는 유구하다. 선사시대부터 남성이 자기 부족의 여성을 다른 부족의 남성에게 넘기는 식으로 여성을 거래해온 행태가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조현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그의 책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에서 “여성을 물품으로 거래하면 남성들 간에 동성 사회적 연대가 강화되고, 남성의 지배 권력은 공고해집니다”라며 “반면 여성은 대상으로 전락하고, 타자화되거나 종속적 위치에 속박됩니다”라고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다. 

헐벗은 여성들을 등장시켜 시선을 끄는 숱한 광고부터 여성 상품화의 극단적인 예인 포르노그래피까지. 우리 사회 ‘여성 상품화’는 너무도 공공연하기에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미국 <타임>의 유럽총괄편집장을 지낸 캐서린 메이어는 그의 책 『이퀄리아』에서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이 상품화됨을 비판하며 “이는 그저 성관계 예절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해로운 영향에 관한 문제다”라며 “바로 남성들이 모든 여성을 사거나 팔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때 사고 파는 대상은 몸 전체가 되기도 하고, 신체의 일부분이나 구멍들의 집합이 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불거진 사건·사고가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며 그 근원이 여성 인권 문제임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여성 상품화 등 여성 인권 문제는 여전히 일부 여성들만의 전장이다. 서점가 통계만 살피더라도 그렇다. 2017년에 비해 2018년 페미니즘 도서의 출간과 판매가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페미니즘 도서를 사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페미니즘 관련 도서의 남성 구매 비중은 전체의 약 23%로, 77%인 여성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서점 밖에서는 안티 페미니스트 협회가 여성계 규탄 시위를 함에 따라 여성인권운동가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 인권 강화를 주장하면 남성들에게만이 아니라 일부 여성들에게도 ‘메갈리안’ ‘워마드’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며 집단에서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돼 배제되기도 한다.  

조현준 경희대 교수는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에서 “증오와 혐오보다는 숙고와 대화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고, 캐서린 메이어는 『이퀄리아』에서 “페미니즘에는 왕성하고 허심탄회한 논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건·사고가 번복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여성 상품화’에 대한 치열하고도 심도 깊은 연구와 토론이다. 토론장의 개최시기를 묻는다면...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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