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에게서 풍기는 짙은 書香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에게서 풍기는 짙은 書香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3.22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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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블로그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 [사진출처= 문형배 판사 포털사이트 '다음' 블로그 화면 캡처]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20일 새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된 문형배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에게서 짙은 서향(書香)이 난다. 나랏일 하는 사람 중에는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필적하는 보기 드문 진짜배기 다독가라는 평이다.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 진주 대아고, 서울법대를 나왔으며 경남과 부산에서 주로 법관 생활을 해왔다.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장과 부산가정법원장을 지냈으며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문 판사는 이미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함께 내달 19일 퇴임하는 조용호, 서기석 헌법재판관의 후임이다. 대통령 몫 지명자로, 청문회 이후 국회 인준 표결을 거치지 않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일 “문 후보자는 우수 법관으로 수회 선정되는 등 인품과 실력에 높은 평가를 받아 추천됐다”며 “평소 억울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법원이라며, 뇌물 등 부정부패를 엄벌하고 노동사건,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했다”고 밝혔다.  

문형배 판사 [사진출처= 연합뉴스]

문 판사는 지난해 헌법재판관 후보로 2번 천거됐고 대법관 후보 10인에 향판(지방 법관)으로는 유일하게 천거될 정도로 판사로서 명망이 높지만, 항간에는 다독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문 판사는 ‘책 재판’으로 유명하다. 2007년 창원지법 부장판사로 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불을 낸 방화범의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고 “자살이 우리 귀에는 ‘살자’로 들린다”고 말했다. 그는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중국 수필가 탄줘잉의 책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선물했다. 

또한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20대 청년에게는 류시화 시인의 책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추천했다. 이 시집은 고대 파피루스서기관에서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시에 이르기까지 약 4,000년 세월 동안 존재해왔던 치유와 깨달음의 시들을 엮은 책이다. 환각물질 흡입으로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항소한 20대 청년에게는 미국의 자기계발 전문가 호아킴 데 포시다의 책 『마시멜로 이야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블로그(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서 ‘독서일기’라는 이름의 서평을 게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트위터 계정과 블로그에 게재된 서평만 총 745개. 서평들은 ▲인문 ▲소설 ▲역사 ▲성찰 ▲희곡 ▲책에 대한 책 ▲정치·사회 ▲경제·경영 ▲심리 ▲인물 ▲건강 등의 항목으로 구분돼있다. 서평 내용은 전부 ‘개괄’과 ‘발췌’, ‘소감’으로 구성했으며 짧은 글이 많지 않다.    

그가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게재된 서평들만 세어보면, 인문 분야 책 2권(『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프랑스의창조적 독서 치료』,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소설 3권(『천년의 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성역』) 정치·사회 분야 3권(『프로파간다 시대의 설득전략』, 『90년생이 온다』, 『권력의 종말』), 경제·경영 분야 1권(『축적의 길』)으로 총 9권이다. 

문 판사는 2010년 자신의 블로그에 ‘책을 읽는 이유 3가지’라는 제목의 글을 적은 바 있다. 글에 따르면, 그가 독서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문화충격’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며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그는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한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는 1년에 몇 회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나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독서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면 후회는 일이 많았다”고 고백하며 “소신을 갖추려면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춰보는 과정을 거치면 생각이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글의 말미에서 사족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그런 구절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며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께 책을 한번 읽어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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