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마음의 ‘철학적 정체’
[책 속 명문장]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마음의 ‘철학적 정체’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3.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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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어떤 스승과 제자는 결코 헤어지는 법이 없다. 물론 언젠가는 이별을 고하고, 멀어지고, 각자의 길을 걸어갈 테지만 그렇다 해도 둘이 완전히 헤어지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는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나누고 물려받은 것이 이후에도 계속 원숙함을 더해가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러한 종류의 사제지간임을 확신한다. 우리의 만남은 진솔하기 그지없엇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단초가 돼주었다. (중략)

어느 날 우리 머릿속에는 우리의 대화가 잉태한 이야기들을 글로 옮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득 떠올랐다. 두서없는 얘기들이 오가기는 했어도 언제나 우리의 이야기는 감각과 감정의 문제로 귀결되곤 했으니까. 우리는 무수한 감정들 사이에 경계가 존재하는지, 각각의 감정들은 어떤 논리로 돌아가는지, 그리고 때로는 그러한 감정들이 지닌 모호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대체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감정을 표현할 단어는 왜 없는 걸까요?”
“그러게요. 한 번 알아봐야겠네요.” (중략)

“산다는 건 결국 경험한다는 것, 혹은 ‘느낀다는 것’이 아닐까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느낀다는 것’은 스페인 출신의 철학자 마리아 삼브라노가 해석한 의미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다시 말해 우리가 소유한 능력인 사고에 견주어서 ‘느낀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능력, 즉 우리의 존재 자체에 속하는 능력으로 간주해야 하는 셈이에요.”
각자가 느끼고 경험한 감정들은 수많은 에너지의 장들 속에 표출되곤 한다. 우리 안이나 우리 앞에 열리는 이 에너지의 장들에 대해 우리는 단일한 이름을 붙일 수도 없거니와 그것들을 의지의 힘으로 통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경험한 것’의 해안이 여전히 남아 있는 동시에 ‘앞으로 경험할 것’의 윤과도 역시 서서히 잡혀가고 있는 매우 복잡한 지형 속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온갖 감각과 기분, 생각과 몽상, 상상, 감정, 정념 등이 얼기설기 뒤섞인 형태로 나타나곤, 혹은 속절없이 흘러가곤, 하기 때문이다. <9~12쪽>

『그 마음의 정체』
샬롯 카시라기·로베르 마조리 지음│허보미 옮김│든 펴냄│448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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