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당신의 3월 (엄마들에게 3월이란)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당신의 3월 (엄마들에게 3월이란)
  • 스미레
  • 승인 2019.03.22 14: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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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이런 달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알던 3월은 새 계절의 설렘을 품은, 그야말로 March(행진)라도 해야 마땅한 그런 달이었다.

엄마가 되어 만난 3월은 영 달랐다. 3월이면 여기저기서 새 기관에 적응하는 아이들과 그들을 어르는 엄마들의 울음소리, 한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일말의 자유를 얻었고, 누군가는 소리없이 좌절했다. 사실, 아이를 7세 초까지 가정보육한 나는 그 양 편 모두에 끼지 못한 입장이었다. 3월은 2월 다음 달일 뿐. 때론 강 건너 보이는 ‘등원 전쟁’ 조차 꿈 같아 보였다.

3월이면 외로웠다.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기관으로 떠나갔기 때문이다. 겨우내 놀이터에서 기관 고민을 나누던 엄마들도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앞을 지날때면 그네들의 달콤한 자유를 깨고 싶지 않아 아이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마주쳤다.

“어머, 올해도 유치원 안 갔어요?”, “어서 보내! 몇 살인데 아직도 안 보내?”

나는 이것을 ‘도심 대단지에서 가정보육하는 이의 숙명’이라 인지했다. 낯 모르는 분들로부터 ‘사회성’에 대한 연설을 들을 때면 답답하고 속상했다. 3월엔 그런 날이 유독 많았다.

“저 유치원 안 다녀요. 일곱 살부터 다닐거예요. 아직은 엄마랑 있는 게 더 좋아요.”

아이였다. 어떤 고정관념도 선입견도 없는 말간 태도와 말투. 어쩌면 아이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는지도 모른다. ‘나에겐 친구가 무려 세 명이나 있고, 아늑한 집도, 엄마아빠도, 하비함미도 있는데 왜 자꾸 유치원에 가라는 것이냐!’

아이가 네 살 때, 친한 친구와 놀이학교 상담을 간 적이 있다. 친구는 잘 노는데 우리 아이는 내게 딱 붙어 빨리 나가자고 아우성이었다. 마지막 남은 ‘백수’ 친구마저 놀이학교 학생이 되어버린 날.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나에겐 왜 이리 어려울까. 궁금했다.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도 우리 아이의 특성임을 그때는 몰랐다.

예민한 아이들은 낯선 상황 자체를 싫어한다. 처음 보는 사람도, 처음 하는 놀이도, 처음 먹는 음식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커다란 자극으로 다가온다.

사회성의 기본은 공감 능력이다. 새로운 곳에 빨리 적응하고, 아무한테나 말을 잘 거는 게 사회성은 아니다. 사회성과 외향성은 같은 말이 아님을, 그때는 몰랐다.

그맘때 쯤‘배려 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의 ‘좋은 사회성은 누구와도 허물없이 지내는 ‘떼거지’ 개념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과 자신이 독립적이어야 함‘이라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육아는 노하우가 아닌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밥 먹는 스타일, 옷 입는 스타일이 다른 것처럼 육아에도 각각의 개성과 스타일이 있는 것이리라.

가정보육에 대한 마음을 굳혀 서울을 떠난 건 그 이듬해였다. 조용한 마을에 살며 비로소 나를 정말 지치게 한 건 아이가 아니라 타인의 눈과 입이었음을 깨달았다. 들리는 말과 신경쓸 눈이 줄어드니 마음은 자연히 홀가분해졌다.

그렇게 집에서 편안한 일상을 보내며 동네 친구들과 놀던 아이는 7세에 유치원에 들어갔다.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미숙했다. 너무 많은 것을 ‘미리’ 걱정하고, ‘미리’ 알려주고, ‘미리’ 준비시켰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엄마의 근심 어린 시선과 질문을 피곤해했다.

나름의 근거를 대며 ‘유치원에 가지 않겠노라’ 질기게 투쟁했다. 결국 백기를 든 건 나였다. 처음 치러보는 3월의 등원 전쟁은 3주만에 끝났다.

아이는 2달 후 새로운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아이가 산책길에 ‘다녀보고 싶다’고 했던 곳이었다. 내 할 일은 딱 하나였다. 미리 걱정하지 않기.

내 마음을 단단히 여미자 아이는 달라졌다. 잔병치례 한 번 없이 씩씩한 원 생활을 했고, 늦깎이(?) 주제에 반장 노릇하며 즐거운 1년을 보냈다. 분에 넘치는 칭찬과 사랑을 받았다.

작년 말,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얼마 전 유치원에 새로 들어온 아이의 엄마였다.

“윤하가 우리 아이를 많이 도와줬대요. 항상 손 꼭 잡고 다니고, 친구들도 소개해줘서 용기를 얻었대요. 아이가 종일 윤하 얘기만 해요.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왜일까, 쾌활하게 전화를 끊었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때 되니 똑 떨어지더라. 가지말래도 가더라.”

껌딱지 아이를 바라보며 한숨짓던 나에게 부모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초강력 엄마 껌딱지였으나, 이제는 타국에 뚝 떨어져 사는 내 동생 이야기다.

정말 그랬다. 여덟 살, ‘원생’에서 ‘학생’이 된 아이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학교에 간다. 손을 흔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제 아이는 ‘학년’이라는 말을 나무테처럼 제 안에 그려넣으며 자라날 것이고, 나의 3월도 더는 흔들리지 않겠지. 겨우내 봄봄 거리며 재촉해도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한 사이, 봄은 당도했다. 마당엔 소담한 꽃눈과 연둣빛 새 잎들이 솟았다. 왜 그렇게 목을 빼고 기다렸을까. 오지 말래도 기어코 봄은 오는데.

집에서 아이와 씨름하는 당신, 3월 등원 전쟁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도 봄은 왔다. 생에 한 번 뿐인 올 3월이다. 당신의 3월. 어떤 일상을 지나고 있더라도 봄바람을 집안에 들이고, 봄비 듣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만큼은 아름답기를 바란다. (물론 미세먼지가 윤허한다면!)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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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2019-04-02 12:33:54
봄을 기꺼이 맘에 들이며.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