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방용훈’ ‘버닝썬 VIP’ 덮고 있는 흑막의 실체는?… ‘어젠다 키핑’ 필요
‘장자연’ ‘방용훈’ ‘버닝썬 VIP’ 덮고 있는 흑막의 실체는?… ‘어젠다 키핑’ 필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3.18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우 윤지오씨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며칠 사이 수많은 이슈가 연달아 터지면서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연예인과 연관된 사건들은 신경 써야 할 중요한 이슈들, 특히 고위층이 연루돼있다고 의심되는 문제들이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구분해 지속적 힘을 갖게 하는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한 방송에서 故 장자연이 당한 성추행과 소위 ‘장자연 리스트’를 목격했다고 주장한 배우 윤지오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잦아들고 있다. 지난 7일 故 장자연의 10주기에 맞춰 관련 책을 출간했으며 지난 12일에는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출석해 ‘장자연 사건’에 국회의원, 재벌, 언론인 등이 연루돼있다고 증언했음에도, 대중의 관심은 전보다 크지 않다. 윤씨는 최근 여성단체와 함께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5일 저녁에는 MBC 탐사보도프로그램 ‘PD수첩’이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친동생이며 조선일보 주주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부인 이미란씨 사망 사건을 재조명해 화제가 됐다. 방송에서 이미란씨가 방용훈 사장과 자녀들의 학대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증거들이 공개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관련 글이 다수 올라오는 등 대중의 비난을 샀다. 

무엇이 이 이슈들을 덮어 버렸을까?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인기검색어를 분석하는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지난 1일부터 17일까지의 ‘방용훈’과 ‘장자연’의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관련 이슈가 화제가 된 지 하루 만에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 5일과 6일 사이 ‘방용훈’ 관련 검색어는 ‘장자연’과 비교해 검색량이 훨씬 많았으나(약 8배 ) ‘PD수첩’이 방영된 후 이틀 뒤(7일 ) 검색량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원인은 연예인 관련 검색어들이었다. 지난 6일 밤 방영된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태도 논란을 빚은 가수 이주연이 지난 7일 인기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방용훈’과 ‘장자연’을 덮어버렸다. 같은 날 결별 및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하차 발표를 한 전현무·한혜진도 2위에 오르며 이에 일조했다. 이후 8일 핀테크 업체 ‘토스’의 상금 지급 이벤트가, 지난 9일에는 배우 최민수가, 지난 10일에는 영화 ‘캡틴마블’이 화제가 되면서 두 이슈는 점점 대중의 관심이 감소했다.          

지난 11일부터는 VIP 성접대 의혹, 정재계 2,3세 및 연예인 마약 의혹 등이 근본원인인 강남 클럽 ‘버닝썬’ 논란이 연예인들의 불법촬영 및 불법촬영물 공유 문제로 프레임이 바뀌며 대중의 망각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빅뱅’의 전 멤버 승리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정준영이 성관계 영상을 공유했다는 지난 11일 SBS 보도가 시작이었다. 대중의 관심은 어느새 온통 정준영의 카카오톡 대화방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정준형의 불법촬영물을 공유한 연예인들이 공개되면서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는 그룹 ‘하이라이트’ 전 멤버 용준형이, 15일에는 그룹 ‘씨엔블루’의 멤버 이종현이 인기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정준영에게 불법촬영물 유출 피해를 당했다고 알려진 연예인들의 반박문도 함께 이슈가 됐다.

일각에서는 공교롭게도 권력층과 연관된 문제들이 이처럼 묻혀버리는 모습을 보고 과거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섹스, 스크린, 스포츠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독재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즐겨 쓴다는 정책)이 떠오른다는 말이 나온다. 섹스와(sex) 스크린(screen)이 모두 특정 이슈가 묻히는 데 기여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과학적으로 어떤 이슈가 대중의 눈에서 멀어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해당 이슈를 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미국의 심리학자 손다이크 등이 제안한 ‘쇠잔이론’(decay theory)에 따르면 중추신경계에 기록된 기억은 사용되지 않으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희미해지고 결국 사라진다. 쏟아져 나오는 다른 이슈들도 망각에 일조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젠킨스와 달렌바흐의 기억 연구에 따르면 망각은 새로운 정보가 뇌에 들어올수록 더 심해진다. 

이정모 외 4인의 책 『인지심리학』에 따르면 대중의 망각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 이슈에 대한 추가적인 학습이 중요하다. 추가적인 학습이 ‘기억흔적’의 지속성을 더욱 증가시켜 망각이 더디게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이슈를 놓치지 않으려면 해당 이슈를 끈질기게 언급해주는 ‘어젠다 키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출간된 책 『저널리즘의 신: 손석희에서 <르몽드>까지』에서 손석희는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어내는 것은 주로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이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상당 부분 지나가 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진정으로 필요한 어젠다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지키는 일은 꼭 필요합니다. (중략) 어젠다를 길게 유지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머물게 해야 하는 게 미디어의 역할이고 그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니까요.”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는 시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