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마블’이 영화라고요? ‘시대의 흐름’입니다
‘캡틴 마블’이 영화라고요? ‘시대의 흐름’입니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3.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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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마블 영화사상 최초로 여성을 주연으로 내세운 ‘캡틴 마블’이 여성 및 소수자 인권을 말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12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1일까지 관객 수는 320만6,611명으로, 역대 마블 솔로 영화 최고 흥행작(‘아이언맨 3’, 약 900만 관객 )보다 빠른 속도로 관객을 모으고 있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개봉한 미국과 중국에서도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해 개봉 첫 주 만에 제작비를 회수했다는 평이다. 

의외로 역대 마블 영화들보다 오락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지만 이 영화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따로 있다. ‘캡틴 마블’은 오락성보다는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여성 인권에 집중하고 있으며 흑인 등 소수자 인권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캐스팅부터 영화가 추구하는 가치를 드러냈다. 주인공 캐럴 댄버스 역의 브리 라슨은 캐스팅 직후 진행한 한 인터뷰에서 ‘캡틴 마블’에 대해 “거대한 페미니즘 영화의 일부” “위대한 페미니스트 영화라고 해서 출연했다”라고 밝혔으며, 조연을 맡은 사무엘 L. 잭슨은 지난해 캐스팅 발표 후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영화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두 주인공이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이었다. 

영화에서는 주로 성차별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악역을 맡은 주드 로(욘-로그 역 )의 관계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주드 로는 주인공에게 숨겨진 강한 힘을 통제하기 위해 “분노를 통제해. 그렇게 감정적이어서는 전사가 될 수 없어”라고 재차 강조한다. 일부 여성 인권 전문가들은 이를 기득권 남성이 여성의 힘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곧 자신의 과거와 정신, 그리고 능력을 주드 로와 그가 속한 ‘크리’ 종족이 통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진정한 힘을 되찾는다.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과거 회상 씬 역시 여성 차별을 상징한다. 1990년대 여성 파일럿이 드문 시절 파일럿이 되기 위해 남성과 경쟁하며 분투하는 주인공은 차별당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주인공의 친구이자 흑인 여성 파일럿 라샤나 린치(마리아 램보 역 )의 과거는 영화에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흑인이자 싱글맘으로서 남성이 중심인 직업에의 도전이 쉽지 않았으리란 사실은 충분히 추측 가능했다. 

‘캡틴 마블’의 감독 애너 보든이 “(‘캡틴 마블’은 ) 단지 페미니스트 영화일 뿐만 아니라 휴머니스트 영화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듯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성차별만이 아니다. 보통 할리우드 영화에서 백인 남성이 선한 역할, 유색인종이 악한 역할을 맡는 클리셰(영화, 노래, 소설 등의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는 이 영화에서 반전된다. 악역인 주드 로는 백인, 이에 대항하는 사무엘 L. 잭슨(닉 퓨리 역 )은 흑인이다. 이는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한 ‘블랙 팬서’에서와 마찬가지다. 또한 우주 소수민족인 '스크럴족'은 처음에는 침략자처럼 묘사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크리족’이 내세우는 일방적인 제국주의에 희생당하는 민족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돌아보면, 단지 ‘캡틴 마블’만이 독특한 것이 아니다. 영화계는 지금 ‘차별’에 대해 말하는 게 대세다. 단적인 예로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총 24개 부문 중 20개 부문 시상에서 소수자와 여성 차별을 다룬 작품이 수상했으며 역대 가장 많은 여성 수상자(15명 )가 연단에 올랐다. 과거 불편해 보이는 드레스 일색이던 시상식과 비교해 여성들의 차림새는 자유분방해졌고,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분홍색과 보라색 의상도 흔해졌다.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차별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진정한 ) 영화는 안식이 아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불편한 자극이며 결말을 알 수 없는 위대한 스펙터클이다. 그 불편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식어가는 심장과 뇌를 다시 데우고, 화석화돼가는 감정과 사유를 깨뜨려 스스로를 계속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 한양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김호영 교수는 책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영화는 확실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고, 그 무언가는 대중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차가운 뇌와 심장을 데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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