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관순의 ‘푸른 하늘’
[칼럼] 유관순의 ‘푸른 하늘’
  • 독서신문
  • 승인 2019.03.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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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방재홍 발행인

[독서신문] 오래전 한 신문에 3·1절 아파트 풍경 사진이 실렸다. 아파트 단 한 집에만 태극기가 걸려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설명에 붙인 제목이 탁월해 오래 기억한다. ‘태극기가 바람에~ 날아갔습니다.’

지금도 3·1절에 아파트에서 태극기를 내건 집은 매우 드물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아예 태극기 거치대가 없다는 보도도 있다. 태극기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지적이 따랐다. ‘선열의 숭고한 뜻과 희생을 기리며 태극기를 걸어야 하는 날’이라는 훈계조 부연설명은 이제 ‘꼰대’들이나 하는 말처럼 됐다.

아니 꼰대들이라는 보수 중늙은이들이 몇 년 전부터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고 있으니 일부 젊은이들은 태극기를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마치 ‘촛불’의 대척점으로 인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꼰대들의 덕수궁 돌담길 태극기와 3·1만세 시위 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흔들던 태극기가 다를 수는 없다. 100년 전 함성이 우리의 자주독립을 대내외로 천명하는 국민적 저항운동이었다면 태극기부대 시위는 기울어진 사상이지만 ‘내가 피 흘려 지키고 나의 땀으로 이룩한’ 오늘날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거리의 목소리다.

시간의 무게가 켜켜이 쌓인 3·1운동과 현재의 태극기 부대 행진은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꼰대들만의 ‘애국심’은 ‘애국심’을 교과서에서나 어쩌다 접한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3·1운동은 외세에 온 국민이 하나 돼 저항한 만세 시위다. 그 저항의 발로는 바로 애국심이다. 그 애국심은 저항정신과 반독재 투쟁정신으로 면면히 흘러 4·19와 6월항쟁으로 이어진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3·1만세 시위는 유관순을 낳았고 독재에 저항한 4·19는 주검으로 떠오른 김주열을 희생자로 낳았고 6월항쟁은 박종철 이한열을 희생자로 낳았다.

4·19를 통해 독재는 국민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값진 경험을 우리는 얻었다. 6월 항쟁은 민의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숭고한 것인지 보여줬다. 바탕은 모두 3·1 운동의 국민 모두가 나선 저항정신에서 비롯된다. 

3·1운동 100주년. 애국심의 상징인 태극기 만세 시위는 이제 어쩌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펄럭이는 태극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태극기가 돼야 하며 손에 손에 들고 흔들고 싶은 태극기가 돼야 한다. 진보 좌파에게 태극기는 우리가 지키고 가꿔야 할 영토 한 뼘 두 뼘이며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과 다름없어야 한다.

보수 우파에게 태극기는 과거의 낡은 때를 씻고 미래를 함께 품는 너른 가슴이 돼야 한다. 태극기는 진정 좌우를 모두 품는 커다란 보자기가 돼야 한다. 3·1 운동정신은 그래서 지금 더 절실하다.

강소천은 동시 「유관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푸른 하늘은 진보의 것도 아니요 보수 소유물도 아니다. 진보와 보수가 손을 맞잡지 않으면 푸른 하늘의 절반 밖에 가질 수 없다. 푸른 하늘은 우리가 지켜야 할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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