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돼지나 오리, 닭 등을 ‘살처분’ 한다. 한자어를 쓰니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살처분’이란 생매장이다. “트럭에 가득 실려 온 돼지들이 구덩이 속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수천 마리의 오리가 뒤뚱뒤뚱 쫓기다가 구덩이 속으로 후드득 굴러 떨어”진다. 저자는 질문한다. “어째서 격리 후 치료가 아닌 격리 후 매몰이란 말인가?” 그리고 분노한다. “우주를 탐사하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시대에 우리가 전염병에 대처하는 수준이 고작 멀쩡한 동물까지 몽땅 파묻는 것이라니.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염병이 있었다. 초기에는 사망률이 높았던 질병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면역력이 생겨났다. 그런데 질병과 싸워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개체들까지 모조리 파묻어 버리면 어떻게 면역력이 생겨날 수 있을까?”
2010년 겨울,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천만 마리가 넘는 돼지와 오리들이 땅에 묻혔고, 전국 4,799곳이 살처분 매몰지가 됐다. 사진작가인 저자는 2년 동안 매몰지 중 100곳을 찾아다니며 그동안 듣지 못했던 동물과 사람의 말을 끌어 올린다.
물컹물컹한 땅. 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며칠 동안 그 물컹한 느낌을 떨쳐 버리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돌이켜 보면 선명한 오리 냄새부터가 이상했다. 3년이나 지났는데 오리 냄새가 다 무어란 말인가?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서 확인할 용기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중략 ) 대개의 매몰지는 몇 겹의 비닐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몇 월 며칠에 몇 마리의 동물을 파묻었다는 정보와 3년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곳에는 비닐도, 경고 표지판도 없었다. <62쪽>
그 이후 몇 차례 더 비닐하우스에 찾아가 상황을 지켜봤다. 갈라진 틈 사이로 솜뭉치 같은 곰팡이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농장 주인이 환기도 시키고, 새 흙도 가져다 부었지만 허사였다. 곰팡이는 보란 듯이 모래와 흙더미를 부둥켜안고 억세게 퍼져갔다. 저 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혐오와 공포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65쪽>
구덩이 매몰 방식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금만 생각해 봐도 원리 자체가 난센스다.
첫째, 만약 비닐만으로 밀봉에 성공한다면? 완벽히 밀봉돼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구제역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부패균조차 살아남을 수 없는 물리적인 환경이 되고 만다. 그러면 3년이 아니라 30년이 지나도 비닐 안에 담긴 동물의 사체는 썩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게 된다.
둘째, 만약 밀봉에 실패한다면? (실제로 비닐, 석회, 흙만으로 완벽한 밀봉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또한 동물을 산 채로 파묻는 과정에서 비닐이 찢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 침출수가 새어 나와 2차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OECD 국가에서는 대부분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이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74쪽>
매몰지 주변을 서성이다 죽은 새를 봤다. 평소의 나라면 기겁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겁이 나지 않았다. 서서히 사라져 가는 새의 흔적으 보며 ‘죽음에도 격이 있구나’ 담담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99~100쪽>
『묻다』
문선희 글·사진│책공장더불어 펴냄│192쪽│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