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하지현 교수 “개인의 자유와 책임 중시되면서 고민 늘어나”
[책 읽는 대한민국] 하지현 교수 “개인의 자유와 책임 중시되면서 고민 늘어나”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3.07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오재우 기자]
[사진=오재우 기자]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티베트 속담 )

고민, 걱정은 참 얄궂은 존재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크든 작든 함께 가야 할 애증의 관계다. 걱정에서 비롯한 적당한 ‘긴장감’이 우리 삶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 ‘종종’ 혹은 ‘자주’ 적정수준을 넘어 ‘불안’의 단계에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마음 그릇의 크기를 키우라고 조언하기도 하지만, 고민은 환경에 비례해 몸집을 키우는 일본의 코이 잉어처럼 마음 크기가 어항이든, 연못이든, 깊은 강이든 공간에 맞게 몸집을 불리며 마음속을 헤집고 다닌다. 방심했다가는 어느새 마음 공간 전부를 차지해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등 갖가지 정신질환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애써 회피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렇듯 고민은 마음 건강의 근간이 되는 긍/부정적 감정 요소지만 그간 우리는 고민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법을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을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상황이 바뀌면 괜찮아질 거라고,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고 또 하나의 ‘고민거리’를 얹어주기 마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지금까지 14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며 대중이 지닌 고민의 무게를 줄여 온 하지현 건국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고민을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질문 거리를 한 아름 들고 건국대병원 옆 의생명공학관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책 ‘고민이 고민입니다’가 잘 팔려야 할 텐데요”라고 고민하는 하 교수에게 고민 잘하는 법을 물었다.

-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 명사로 선정됐다. 소감과 함께 독자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린다.

먼저 ‘책 읽는 대한민국’의 명사로 선정해 주셔서 영광이다. 10년째 듣는 말이지만 단군 이래 출판계는 계속 불황이라 하고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하지만, 그중에도 읽는 분은 읽는다고 생각한다. 책이 지닌 물성, 읽는 즐거움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고 계신 <독서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제 책 『고민이 고민입니다』가 새로운 재미를 드릴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저는 1년에 150권 정도의 책을 읽는 다독가로서 책에 대한 나름 까다롭고 예민한 눈이 있는데, 그 눈으로 고민하면서 세상에 없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때문에 이 책이 많은 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최근 심리학이 언론에 많이 노출되면서 마음의 병 치료에 대한 인식이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실제로 환자 수는 많이 늘어났는지? 어떤 증상으로 찾아오는 환자가 많은지?

통계를 제시하긴 어렵지만 병원 문턱이 낮아진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전에는 정신과에 다니면 ‘취업이 안 된다더라’ ‘보험가입이 어렵다더라’ 등의 얘기가 많아서 힘들어도 못 오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감기, 두통, 발이 겹질렸을 때 병원을 찾는 마음으로 가볍게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불안, 우울, 불면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은 편인데, 고민하다가 그 결과물로 너무 불안해지거나, 혹은 고민하다 지친 분들의 비중이 높다.

-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는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20세기 들어 개인주의/자유주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이 중시되면서 고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고대사회에서 봉건주의 사회까지는 왕과 신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됐다. 일반 사람들은 계급에 맞춰 살면 됐고 절기에 맞춰 살기만 하면 됐다. 개인이 결정할 일은 매우 적었다. 이후 매뉴얼·법전·가이드북의 시대라 할 수 있는 근대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규정집에 맞춰 살기만 하면 됐다. 법대로 살고, 규정대로 살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자유도가 높아지는 20세기 이후의 사회다. 그전까지는 왕이 정해주는 대로 가이드대로만 살면 됐는데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고 그 선택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다 보니 개인의 선택이 허용되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다. 생각하기에 따라 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힘든 일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면서 마음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게 느껴지게 됐다.

둘째는 정보사회 등장에 따라 무한하게 주어지는 선택지의 문제다. 정보사회 이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무한히 늘어나 마음과 뇌의 수용범위를 넘어서게 됐고, 이런 한계들로 인해 일상에서 문제를 경험하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 사회적으로 개인에게 요구되는 고민의 총량이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책임감, 두려움 등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하거나 결정을 회피하게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고민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진=오재우 기자]
[사진=오재우 기자]

- 병원 문턱이 낮아졌지만, 아직도 정신과 진찰을 꺼리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혹시 ‘이 정도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라는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내 몸에 생리적인 변화가 왔는지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 걱정과 불안을 나눠서 보았듯, 걱정은 많지만 몸으로 오는 불안은 없고 일상생활 잘하고, 잘 먹고, 잘 자면 굳이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 만일 생각의 틀에 문제가 있다면 그때는 심리 상담을 받거나 잠시 쉬면서 생각을 바꾸면 된다. 그에 반해 내 삶의 루틴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고 2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이때는 정확한 진단과 생리/생물학적 치료와 전문적인 가이드에 따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자연주의, 쉼, 내려놓기, 아무것도 안 하기, 흘려보내기, 의지로 극복하기다. 이건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쌓아온 과학이 만든 문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백신을 부정해서 집단면역이 90% 밑으로 떨어지면서 최근 홍역이 퍼졌듯, 이런 식의 생각은 자신을 위험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위험을 미칠 수 있다. 빨리 좋아질 수 있는 길을 편견, 낙인, 이상한 신념으로 가로막는 것은 좋은 고민의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심리학적 잣대를 들이대면 이 세상에 정상인은 없다”는 말이 있다. 저서 『고민이 고민입니다』 속 “심리학에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충고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

맞다. 지나친 심리화를 경계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내면을 성찰하고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근데 그것만 들여다보게 되면 사람은 모든 걸 설명하고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누구누구 때문에’ ‘과거의 어떤 일 때문에’라고 결론 내릴 위험이 있다.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행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심리화에 빠지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과거의 문제로 인해 내가 만족할만한 결과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적인 결론을 내린 채 실행에 임하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심리 서적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객관화하는 작업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모든 것을 ‘심리화’로 설명하려는 것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 책에서 “많은 사람이 깊은 성찰을 통해 ‘진짜 자신’을 발견하면 이 모든 괴로움을 단번에 끝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오해한다”고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

간혹 나의 참 자아를 찾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을 찾는 그 날이 올까? 자아를 찾으면 모든 것이 굉장히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 들은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어떤 굉장히 대중적인 스님의 이야기다. 그분의 책 제목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인데 그분이야말로 멈추지 않고 일하고, 또 다른 책이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인데 그분은 고요하지 않고 늘 어딜 가를 바쁘게 다니신다. 이분은 뭔가? 언행일치가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분에게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삶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고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혹 내가 나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됐다 하더라도 세상이 바뀌는 한 나란 사람은 시시각각 변할 수밖에 없다. 연속선상에 있는 것 같지만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서 ‘나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 심리 서적을 보고 ‘아 바로 이거야’라는 깨달음이 있어도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때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훈습’이라고 하는데, 좋은 훈습 방법을 소개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을 가르쳐보는 것이다. 좋은 아이들 교육 방법 중 ‘가르치기’가 있다. 배운 것을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 자기 것이 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다. 마찬가지로 책 『고민이 고민이다』는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물론 2부(고민을 방해하는 감정들 ), 3부(우리 뇌는 고민을 싫어한다 )는 많은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4부(고민을 잘 풀기 위한 공식들 ), 5부(고민을 잘하면 훨씬 살 만해진다 )는 굉장히 실용적이고 ‘어 이거 한번 해볼 만한데’라는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 고민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권해보고, 좋은 반응이 돌아오면 어느새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진=오재우 기자]
[사진=오재우 기자]

- 1년에 150권 이상을 읽는 다독가로 알려졌다. 책을 선택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는지?

독서와 관련해 3:3:3 법칙을 갖고 있다. 10권을 읽는다면 그중 3권은 전공 서적이나 일하는 데 필요한 책을 본다. 또 다른 3권은 책을 쓰거나 강의에 필요한 내용 또 최근 유행하는 책, 소장하고 싶은 고전 등을 선택한다. 이런 책들이 참 재미없는 60%라면 남은 30%는 오직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고른다. 만화책일 수도 있고 소설책일수도, 재미있는 에세이일수도 있다. 정말 책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골라 넣는 3:3:3 방식으로 배분한다.

또 30% 정도는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을 고른다. 보통 책을 살 때 15% 정도 할인받을 수 있는데 그 돈이 적립된 만큼을 긴가민가하지만 끌리는 책에 투자하는 거다. 가끔은 전혀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유형의 글을 찾는 발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독립서점에서 서점 주인이 큐레이션한 책을 사기도 한다.

- 본인만의 독서법이 있는지?

책을 읽다가 괜찮은 내용은 손으로 적고 몇 페이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등을 메모한다. 양이 너무 많으면 사진을 찍어 에버노트 앱에 집어넣는다. 내 책 읽기와 글쓰기의 중간단계에 있는 매개체가 에버노트다. 책 내용을 이후에 검색할 수 있도록 키워드들과 함께 적어 놓는다. 예를 들어 괜찮은 인문서를 보고 나면 그 책을 정리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든다. 7~8시간 걸려서 한권을 줄 그어서 보고 나면 다시 날을 잡아서 3~4시간에 걸쳐서 핵심 내용을 에버노트에 집어넣고 원저자, 인용문 등 참고문헌을 내 방식대로 정리한다. 그렇게 5~6년을 하면 특정 주제로 책을 쓰고 싶을 때 키워드대로 검색해 자료만 찾으면 책도 금방 나온다.

- 지금까지 15권이 넘는 책을 내셨는데, 이번에 특별히 고민에 관련한 책을 출간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시중에 상담 책은 많지만 고민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책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공부에 관련된 책은 많다. 공부법에 관련된 책도 의외로 꽤 있다. 하지만 ‘고민이 뭘까’를 다루는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있다 해도 가볍게 쓴 일본책들뿐이어서 고민에 대한 얘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고민이라는 키워드가 아직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찾은 거다.

- <독서신문> 독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친하게 지내는 세분의 책을 권하고 싶다. 책 『고민이 고민입니다』의 추천사를 써준 분들이기도 하다. 먼저 책 『열두 발자국』을 추천한다. 대표적인 과학저술가 정재승 박사가 2시간씩 하는 대중강연 12개를 모아놓은 책이다. 세상과 과학에 대한 이치를 아주 쉽게 설명했다. 두 번째 추천도서는 정신과전문의 송형석의 『나라는 이상한 나라』다. 감성적이면서도 유쾌한 글쓰기, 자유연상이 돋보이는 책이다. 나는 수렴형이지만 송형석씨는 확산형인지라 같은 내용을 쓰라고 해도 나는 절대 못 쓸 책이다. 마지막 책은 임경선 작가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이다. 일본 여행 책이 매우 많지만 임경선 작가의 교토에세이는 교토가 지닌 특유의 정서와 일반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숨겨진 장소들을 소개하면서 마치 교토에 훌쩍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