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 그릇 총합은 몇 점?... “자살이 정답인 인생은 없다”
당신의 인생 그릇 총합은 몇 점?... “자살이 정답인 인생은 없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3.06 1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다.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

지난해 5월 9일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당시 104세)는 스위스 바젤 모처에서 비영리단체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 )의 도움을 받아 ‘조력 자살’을 감행했다. 그는 의사가 건넨 액체를 마신 뒤 곧 의식을 잃었고 몇 분 뒤 숨을 거뒀다. 구달 박사는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호주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지식인이었지만,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황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호주에 거주하던 구달은 ‘조력 자살’이 합법인 스위스로 향하는 과정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면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담론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해당 소식은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해외토픽정도로 여겨졌지만, 6일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로 죽음을 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신문>은 “2016년과 2018년 각각 한국인 2명이 ‘조력 자살’로 세상을 등졌고 지금도 107명의 한국인이 ‘조력 자살’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전했다.

‘조력 자살’은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자살 방법이다. 의사가 직접 약물 등을 투입해 목숨을 거두는 ‘적극적 안락사’보다 한 단계 소극적인 방식으로 반드시 본인이 직접 약물을 마시거나 투여한다. 현재 스위스를 포함해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미국 특정주(州 )에서 허용되고 있으며, 스위스의 경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정신상태만 확인된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죽음’을 허락한다.

이런 배경에는 스위스의 높은 자살률이 작용한다. 스위스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2.5명(2015년 기준 )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 37개국 중 14위 수준이다. 매년 100건 이상의 열차투신이 발생하고 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해 불구가 되는 등 폐해가 잇따르자 ‘차라리 인간답게 죽는 방법을 열어주자’는 여론이 ‘조력 자살’을 허용케 했다. 자살률 25.8명(2015년 )으로 세계 2위에 오른 우리나라가 지난해 들어서야 존엄사(생명유지를 위한 치료행위를 중단 가능 )를 허용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진보()된 모습이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누리꾼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면 간호하랴 병원비 대랴 집이 풍비박산 나는데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조력 자살을 허용하라”는 자살 찬성 측과 “죽음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떻게 사람 목숨을 인간 손으로 결정하나. 인생의 고비마다 죽음을 택했으면 난 벌써 수백 번도 더 죽었겠다”라는 자살 반대 측이 맞서고 있다. 또 누군가는 “손쉬운 자살이 인간답게 죽을 권리의 답이 될 수 없다”며 “자살의 행위를 막는 데만 힘쓸 것이 아니라 원인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삶의 가치와 살아야만 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셸리 케이건 예일대학교 철학 교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삶 그 자체는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 삶의 가치는 인생에서 경험하는 쾌락과 고통, 성취와 실패 등을 모두 더한 합계”라며 “어떤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평가 내리기 위해서는 그 내용물의 가치를 모두 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삶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떠나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도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관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100점으로 설정한다면, 내용물의 소계가 -10점이라도 해도 그 총합이 90점이기 때문에 삶은 가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내용물’ 차원에서 인생 전체가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다고 해도 총합은 언제든 플러스가 될 수 있다”며 “나는 단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삶보다 더 고차원적인 삶이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레프 톨스토이는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스트레스 가득한 공직생활과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 질병으로 고통 받던 이반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아내와 아들의 눈물을 보며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된다. 삶을 등지려는 주된 이유인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책이 죽음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되돌릴 수 없는 명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