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우리 역사 알기] 5,000년을 지켜온 독립 “우린 너무 몰랐다”
[삼일절-우리 역사 알기] 5,000년을 지켜온 독립 “우린 너무 몰랐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3.0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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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중략 )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중략 )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년이 지났다.” (3.1 독립선언서 중에서 )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올해, 우리는 조상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수천년이나 지속됐다는 ‘독립’의 유구한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시대 최고의 역사·문화학자로 꼽히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책 『우린 너무 몰랐다』에서 그 제목대로 “우린 너무 모른다”라며 한숨을 내쉰다. 그에 따르면 한반도에 근거한 국가들은 5,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명실상부한 세계의 중심이자, 수천년간 타국에게서 주권을 용맹하게 지켜낸 ‘독립국’이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한반도는 어느 대륙의 지배도 거부하는 강대한 곳이었다. 그 근거는 바로 고인돌의 분포다. 전 세계 고인돌의 60%가 한반도에 있으며, 그중 전라도 지역에서 발견된 것만 2만여 기에 이른다. 도올 선생은 이를 “세계 어느 곳에도 유례가 없는 밀집도”라고 표현했다. 고인돌 10톤짜리를 운반하는 데 최소한 200명에서 300명의 인력이 필요하며 1,50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집단이라야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선사시대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역시 강대국에 굴종하는 제후국(왕에게 영토를 받은 제후가 다스리는 나라)이 아니었다. 이는 ▲“지고, 지상, 지극한 존재”라는 뜻인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과 ▲왕과 천계와의 연결성 ▲독자적인 연호(군주국가에서 군주가 자기의 치세연차에 붙이는 칭호) 사용 등으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구려 ‘호태왕비문’에서 고구려인들이 시조인 추모왕(주몽왕)을 기술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천제의 아들”이요 어미는 “하백여랑”이라고 말한다. 또한 ‘호태왕비문’에서 광개토대왕을 부르는 호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영락대왕” “대왕” “왕” 등이다.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 거서간(신라 초기의 왕호 중 하나 )이나, 석탈해 이사금(신라 초기의 왕호 중 하나 ) 등도 그 기록을 보면 “천상으로부터 지상에 강림한 유일한 최고의 주권자”였다. 백제의 “건흥” 신라의 “건원” “개국” 발해의 “인안” “대흥” 등 독자적인 연호 사용도 이 네 나라가 명실상부한 독립국이었음을 보여주는 척도다.  

고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독립국이자 세계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 고려 태조인 왕건은 “천수”라는 연호를 사용했고, 『고려사』에는 태조왕건을 “황제”라고 칭하기도 했다. 또한 20세기 세계 불교학을 정립한 일본의 학자 타카쿠스 쥰지오로는 고려의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세계대장경의 정본”이라고 극찬했다. 도올 선생은 이를 두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세계사적으로 ‘대장경’이라는 개념 자체의 새로운 기준을 확립한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다시 말해서 세계대장경의 기준이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립’은 수없이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도올 선생은 한반도가 처음으로 독립국에서 제후국으로 전락한 사건이 바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고 주장한다. ‘위화도 회군’ 이후 조선은 힘이 없는 명을 상대로 굴종의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명이 고려보다 위라는 이성계의 주장은 쿠데타의 명분이었을 뿐이라는 분석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도올 선생에 따르면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 온 강대국에 복종하는 이데올로기는 일제강점기 친일을 낳았고, 독립 후에도 “미국에 대한 사대”를 명목으로 같은 민족을 학살하기까지 한 반인륜적인 반공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년”이라는 3.1독립선언서의 선언처럼, 우리 민족은 흔들리면서도, 그 유구한 정체성인 ‘독립’을 찾기 위해 분투해왔다. 이는 일제강점기에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의 독립운동으로 나타났다. “나는 밥을 먹어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먹고, 잠을 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잔다”라는 안창호 선생의 말과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다”는 유관순 열사의 말은 독립운동가들과 이들을 키워낸 민족의 위대한 정신에 공통적으로 심어져 있었다. 이는 독립 이후에도 여순민중항쟁과 제주4.3민중항쟁으로 이어져 타국에 휘둘려 동족을 학살하려는 시도에 항거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 정체성을 바로 세웠다.   

조상들의 독립에 대한 염원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으로 세워진 지 100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염원’은 고작 100년이 아니라 5,000년간 지속해온, 그리고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 심어진 DNA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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