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그때의 '함성'은 왜 '한숨'이 됐을까?
‘3·1운동 100주년’ 그때의 '함성'은 왜 '한숨'이 됐을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3.0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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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KBS]
[사진제공=KBS]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대한 독립 만세.”

1919년 3월 1일 토요일 오후 2시. 경성 탑골 공원에 5,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경신학교 졸업생 정재용이 팔각정에 뛰어올라 조선의 독립을 크게 외쳤다. 만세 행렬은 전국 방방곡곡, 세계 도처로 퍼져 나갔다. 일제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노르스름한 순사 옷자락만 봐도 질겁하던 소시민들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간 억눌려 살아왔던 설움을 폭발시키기라도 하듯 조선의 독립을 목 놓아 불렀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맹렬했던지 뭇 일본인이 엉겁결에 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3·1운동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국내는 물론 재외 동포 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국민 모두가 같은 목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선 민족 최대 단결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3·1운동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 신분제의 잔재가 남은 시기였지만, 국권 침탈은 국민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는 아픔이었기에 모두가 하나 돼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에는 계층에 따른 배타적 감정,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4월 11일) 100주년을 맞는 2019년, 대한민국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100년 전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노조원 자녀의 고용세습 허용하라” “(특정 노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특정 이익집단의 개별 이익을 강조하는 구호로 뒤바뀌어 광장에 울려 퍼지면서 극심한 사회적 차별을 양산하고 있다. 기득권층은 오르기 힘든 계층 사다리를 만들어 부와 권력의 분산을 막기에 급급하고, 비기득권층은 내 편과 네 편으로 파벌을 갈라, 내 편에게만 계층 사다리에 오를 기회를 주면서 100년 전 함성을 100년 후 한숨으로 만들고 있다.

다수의 사회학자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한국 전쟁에서 찾고 있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책 『공부 중독』에서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른 사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온 국민이 거지가 돼버렸다”며 “물론 일제시대 때도 신분제도가 해체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양반이고 상놈이고 몽땅 거지로 만들어버린 계기는 한국전쟁이다.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게 되면서 ‘돈 많은 놈이 장땡’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히게 됐다”고 말한다. 돈에 대한 욕망이 많은 돈을 편하게 벌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공동저자인 하지현 정신의학 박사는 “‘내가 정규직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 이 사람들은 비정규직으로 2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정규직이 바로 돼야 해요? 이건 불공평해요’라는 것이 요즘 (기득권) 친구들의 생각”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은) 기대치가 높고 준비도 충분히 했지만 (좋은 직업) 자리는 한정돼 있으니 결국 잡은 자리는 기대치에 못 미쳐 만족스럽지 못한 오버퀄리파잉(자격 과잉)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무엇보다 돈이 최대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 갈등이 심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물질만능주의적 분위기가 개인에게 영향을 끼쳐 사람을 계층으로 구분 짓고 타 계층을 ‘혐오’하는 상황을 만든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책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에서 “‘개인의 특성’은 ‘외부적 조건’과 무관할 수 없다. 자신의 주변에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내 정체성과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며 “이 과정에서 ‘비상식’이 ‘상식’으로 둔갑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혐오’라는 감정은 대개 외부적 지지를 동반한 개인의 의사 결정이기 때문에 논리가 엉성해도 확신이 견고하다. 이 때문에 ‘그럴만하니 혐오한다’는 말도 안 되는 자신만만함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100여 년 전 독립운동가 심훈은 시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중략)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을 벗겨서/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여러분의 행렬에 앞장 서오리다”라며 광복의 순간을 학수고대했다. 삼각산이 일어나 춤을 출법한 ‘독립’이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은 당시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더욱 살기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모두의 행복’이 아닌 ‘나만의 행복’을 강조하는 풍조 때문은 아닐까? 오늘의 시대상에 뭇 사람이 한숨 쉬는 이유는 어쩌면 그 모습에서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일제 강점기 매국노의 인식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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