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수자 ‘차별’은 ‘아카데미’에서 멈췄다
여성·소수자 ‘차별’은 ‘아카데미’에서 멈췄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2.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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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차별은 아카데미에서 멈췄다. 지난 24일(현지시각 )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시상식)은 그야말로 다채로움의 향연이었다. 참가자들은 의상과 수상소감을 통해 여성과 성소수자, 흑인, 이민자 차별에 대한 배격을 전했으며, 총 24개 부문 중 20개 부문 시상에서 소수자와 여성을 다룬 작품이 수상했다.  

레드카펫에서부터 관습은 깨졌다. 과거 드레스 일색이었던 시상식과 비교해 여성들의 차림새는 자유분방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코르셋’이라고 부르는 여성의 ‘꾸밈 노동’을 배격했다는 평이다. 영화 ‘에이스 그레이드’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한 만 15세 배우 엘시 피셔는 드레스 대신 시크한 검정 슈트를 입었다. 영화 ‘스파이’로 알려진 배우 멜리사 맥카시는 검정 바지에 바닥까지 닿는 흰색 케이프를 매치시켰다. 애니매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조이’ 목소리를 열연한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에이미 포엘러는 시크한 검정 슈트뿐만 아니라 간소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해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의상에 있어서 가장 큰 파격의 주인공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 가수이자 뮤지컬배우 빌리 포터는 턱시도(상의 )와 드레스(하의 )가 섞인 의상을 입고 레드카펫 위에 올랐다. 빌리 포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레드카펫 위의 자신의 사진과 함께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할 때는, ‘드레스 업’해야 한다”고 적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남성성과 여성성 그 사이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포터는 지난달 미국영화협회상(AFI)에서도 금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바 있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분홍색과 보라색 의상을 입은 이들도 많이 보였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한국계 미국인 여성 배우 아콰피나는 반짝이는 분홍색 슈트를 착용했다. 영화 ‘아쿠아맨’과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활약한 남성 배우 제이슨 모모아는 연분홍색 슈트를 차려입어 호평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국내에 알려진 감독 스파이크 리는 깔끔한 보라색 슈트에 보라색 넥타이로 눈길을 끌었다.   

수상작들의 면면 또한 소수자와 여성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작품들이었다. 1960년대 초를 배경으로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우정을 그린 작품인 ‘그린북’이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았으며, 이 작품의 조연인 마허셜라 알리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린북’의 피터 패럴리 감독은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것”이라며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사랑하라는 것,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흑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블랙팬서’는 ‘그린북’과 마찬가지로 3관왕(미술상·의상상·음악상)을 차지했다. 최초로 흑인 ‘스파이더맨’을 등장시킨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할렘가를 배경으로 뱃속 아이를 돌보며 인종차별에 맞서 남편의 결백을 입증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의 배우 리자이나 킹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흑인 인권운동가의 도움으로 자신을 키워준 인종차별주의자와 백인 우월주의자에게서 등을 돌리는 백인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 ‘스킨’은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1970년대 말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를 잠복수사한 흑인 형사 론 스툴워스의 에세이를 각색한 작품인 영화 ‘블랙클랜스맨’의 감독 스파이크 리는 각색상을 받았다. 리는 수상소감에서 “2020년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 힘을 모아 역사의 바른 편에 서야 한다.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소수자 혐오·반이민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발언에 대해 “누가 아프리칸 아메리칸(미국 내 흑인)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는지 보라. 그 어떤 대통령보다 더 많다!”고 트위터를 통해 반박했다.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은 지난해 말 개봉해 전 세계에 영국 밴드 ‘퀸’ 열풍을 일으킨 영화 ‘보해미안 랩소디’였다. 이 영화는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편집상을 받았으며 영화의 주연으로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배우 라미 말렉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말렉은 자신도 프레디 머큐리와 마찬가지로 이민자라는 사실을 밝히며 “이런 스토리를 쓰고 이야기할 수 있어 더욱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18세기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세 여성이 벌이는 정치극을 다룬 여성 중심의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주인공 올리비아 콜먼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월경에 대한 오명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고 직접 생리대를 제조하는 인도 여성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피리어드, 엔드 오브 센텐스’는 단편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멕시코시티 내 로마 지역의 한 가정부의 시선을 다룬 영화 ‘로마’는 촬영상과 외국어영화상, 감독상을 받았다. 2014년 영화 ‘그래비티’로 감독상을 한 차례 수상한 바 있는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번에도 감독상을 받으며 “1,700만 여성 노동자 중에 1명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들을 봐야 할 것이고 이런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시상식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여성 수상자(15명)가연단에 오르기도 했다. 

책 『넬슨 만델라 어록』에서 만델라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았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가 우리 삶의 의미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제91회 아카데미는 시상식이기보다는 인류의 인권 증진을 위한 시위장이었다. 여성·소수자·이민자의 인권. 우리나라는 어디쯤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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