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형 전자담배 ‘베이핑 문화’… 덜 해로우니 마음껏 피워?
액상형 전자담배 ‘베이핑 문화’… 덜 해로우니 마음껏 피워?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2.25 18:09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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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2014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꼽은 올해의 단어는 ‘Vape’(베이프)였다. “전자담배를 흡입한다”를 뜻하는 신조어. 2014년에 이 단어 사용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청(FDA)는 10대층에서 독버섯처럼 번지는 전자담배를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소매점에서 판매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우니라나 역시 ‘베이프’라는 단어가 상륙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행위, 일명 ‘베이핑’(Vaping)이 20·30세대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새로운 문화로 부상하고 있다. 이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태울 때 나오는 풍부한 기체를 이용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내는 행위인 ‘베이핑 트릭’을 연습하고 자랑한다. 이들은 또한 “전자담배는 그다지 유해하지 않으니 마음껏 피워도 된다”고 여기며 이 잘못된 믿음을 남들에게 전파한다.     

“지금부터 베이핑 시작하겠습니다.” 한 고등학생이 전자담배 기기에 담긴 기체를 입으로 흡입한 뒤 입과 코로 내뱉는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일반 담배보다 훨씬 많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 학생은 다시 한번 기체를 흡입한 뒤 이번에는 연기를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내뿜는다. 페이스북 라이브 댓글창에는 “베이핑 멋있어요” “베이핑 잘하시네요”라는 식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린다. 이 학생만이 아니다. 페이스북에는 이처럼 ‘베이핑 방송’을 하는 사람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방송 제목만 보면 “퇴근길 베이핑” “담배 끊고 베이핑” “하루종일 베이핑” 등이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마찬가지. ‘베이핑’을 검색하면 2만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게시물 대다수에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담은 사진 및 영상이 있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담배 연기를 뿜는 영상 밑에 “목표는 양쪽 콧구멍에서도 O-RING이 나와 총 4개(입에서 두 개, 코에서 두 개)의 O-RING을 만들어내는 것!” 다른 이용자는 “베이핑 트릭 연습”이라고 적었다. 해외에서 유명한 ‘베이핑’ 전문가들의 ‘베이핑’ 영상은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유튜브에서 ‘베이핑’을 검색하면 ‘베이핑 공연’과 ‘베이핑 파티’가 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 1위 전자담배 트릭팀과 함께한 베이핑 파티”라는 제목의 한 영상에서 사람들은 담배 연기로 자욱한 밀폐된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전문가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함께 담배를 피운다. “무화량 대회”라는 제목의 영상에서는 담배 연기를 누가 많이 내뿜는지를 겨루는 모습이 나온다. 여러 가지 ‘베이핑 트릭’을 강의하는 영상도 심심찮게 보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검색량을 분석하는 ‘네이버 트렌드’에서 ‘베이핑’을 검색하면 2016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해당 단어의 검색량은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액채형 전자담배를 이용해 담배 연기를 멋있게(?) 뿜는 모습이 ‘멋’이 되고 트렌드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트렌드']

“전자담배 건강에 덜 유해”, “마음껏 피워도 돼”… 유튜브로 인식 퍼져 
청소년 액상 구매도 쉬워? 

“전자담배는 아무리 피워도 건강에 나쁘지 않아요.” 이러한 ‘베이핑’ 유행의 기저에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훨씬 유해하지 않다는, 따라서 마음껏 피워도 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 잘못된 믿음은 마치 가짜뉴스가 전파되듯, 주로 유튜브를 통해 퍼지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담배 8개월 핀 후 몸의 변화 & 부작용”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한 유튜버는 “전자담배를 다른 사람보다 많이, 8개월간 피웠다”며 “전자담배를 피우면서 몸이 훨씬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전자담배를 피우고 난 후 입안에 남아있는 잔향을 없애기 위해 물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또한 “전자담배는 간접흡연도 안 된다”며 “박사들의 논문을 통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리뷰하는 채널을 운영하며 구독자 6,600명을 보유한 한 유튜버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몸에 좋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며 “일반 담배와 비교했을 때는 그 유해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영상들이 ‘담배보다는 훨씬 덜 유해하다’고 강조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영상을 찍는 이들은 대부분 건강 전문가라기보다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홍보하는 수익성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영상은 성인은 물론 청소년까지 전자담배의 유혹에 빠지게 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질병관리본부가 2017년 3월부터 8월까지 전국의 만 13에서 18세 사이의 청소년 1,082명의 흡연 실태를 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1명이 전자담배를 피워본 경험이 있다고 나타났으며 전자담배를 사용한 이유로 ‘호기심에’ 혹은 ‘덜 해로운 것 같아서’를 꼽았다. 영상을 보고 전자담배가 덜 해롭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각종 SNS에서는 청소년들이 전자담배를 피우는 영상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만 19세 미만에게는 판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설상가상으로 전자담배 구매도 쉬워 보인다. 한 청소년은 “중고나라에서 액상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서 ‘전자담배’를 검색하면 전자담배의 액상을 판다는 글들을 볼 수 있다. 중고나라에서 규제를 하고 있지만, 최근에 올라온 글들은 남아있어 그 규제가 잘 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덜 해로운 담배는 없습니다”… 뼈 주저앉히고 심혈관질환 유발 

전자담배를 권하는 이들의 “덜 해롭다”는 주장이 마치 “피워도 된다”처럼 들린다. 그러나 전자담배는 애초에 피우지 않아야 좋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니코틴이 들어있는 이상, 니코틴 의존을 일으키는 이상 액상형 전자담배는 몸에 해롭다”며 “니코틴은 혈관 벽에 안 좋은 물질을 쌓이게 해 혈관 벽을 좁히는 심혈관질환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또한 “니코틴을 분해하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 칼슘”이라며 “30대 전자담배 흡연자들이 잇몸이 일찍 주저앉아 임플란트를 굉장히 빨리하는 등 골감소증과 골다공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영국 버밍햄 대학교의 데이비드 티케트 교수 연구팀이 <흉부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자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는 허파의 면역세포를 약화시켜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전자담배에서 나온 연기는 특히 먼지입자, 박테리아, 알레르기를 제거하는 세포인 ‘폐포 대식세포’를 손상한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티케트 교수는 “전자담배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회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의과대학 연구진이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니코틴이 없는 전자담배(흡연욕구저하제)를 피울 때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난다. 증기를 들이마시는 행위 자체가 우리 인체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 김관욱은 그의 책 『흡연자가 가장 궁금한 것들』에서 “말 그대로 해로움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면 줄이기라도 하자는 뜻”이라며 “담배를 끊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전자담배를 통해 해로움을 줄이는 게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전자담배를 겨냥해 낸 광고에서 “덜 해로운 담배는 없습니다”라고 했듯, 흡연은 그 자체로 해롭다. 백번 양보해서 혼자 피우는 것은 좋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전파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베이핑 문화’의 전파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유해하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보건복지위, 서울 양천갑 당협위원장 )이 지난 15일 액상형 전자담배 등 신종담배를 담배의 규제 범위에 포함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유튜브를 통해 무분별하게 전파되는 ‘베이핑 문화’ 역시 통제 대상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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