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낳은 공분...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
분노가 낳은 공분...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2.25 13:1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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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새벽 4시 30분께 남양주시 호평동 모 아파트 인근 도로. 만취한 상태로 도로변에서 한참 택시를 기다렸던 A씨는 어렵게 잡힌 택시에 올라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다”며 기사에게 짜증을 쏟아냈다. 가뜩이나 짜증났던 차에 운전사가 “그럼 다른 차를 타라”고 대꾸하자 욕설을 내뱉으며 여성 운전자(62)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지난 10일 벌어진 여성 택시운전사 폭행 사건 이야기다.

31살의 승객 B씨는 택시에 오른 후 할아버지뻘 되는 운전자의 말투를 문제 삼아 욕설을 내뱉었다. B씨는 “너 같은 XXX들은 손님이 얼마나 개 X 같은 XX가 많은지 알아야 해”라며 운전자에게 동전을 던지며 모욕했다. 충격을 받은 택시운전사가 쓰러졌지만, B씨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자리를 떴고, 결국 택시운전사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지난 15일, 사망한 택시기사의 며느리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을 통해 가해자가 아직까지 사과도 없이 태연하게 취업 면접을 준비하거나 온라인에서 함께 게임을 즐길 사람을 찾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공분을 자아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울분(鬱憤)이다.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느낀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쏟아내면서 피해자를 낳았고, 그런 사실은 다시 대중의 울분으로 이어진 것이다. 울분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유독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가 공개한 보고서 「한국사회와 울분」에 따르면 연구 참여자 2,024명 중 14.7%가 일상생활에서 장애를 일으킬 정도의 울분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의 2.5%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울분의 원인으로 보람 없는 노력을 지목했다. 연구 참여자의 66.7%가 ‘나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지만, 그중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는다고 답한 비율은 지극히 적었다. 오히려 64.1%는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실수는 즉각 비판받는다’고 답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무효 취급’을 당했을 때 느끼는 ‘불공정’의 감정을 울분의 원인으로 해석하고, 이런 감정이 가득한 사회를 ‘무효 사회’로 지칭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가 곧 ‘무효 사회’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하완 작가는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서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그마저도 안 하면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며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고 말한 바 있다.

대중이 앞서 발생한 동전 택시기사 사건에 울분을 토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노동의 대가를 욕설과 동전 세례의 모욕으로 감당해야 했고, 그 충격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음에 이르렀지만 경찰은 가해자를 ‘사망 치사’가 아닌 ‘단순 폭행’으로 처리하면서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의 감정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분노가 대중의 분노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무효 사회’를 넘어 ‘분노 사회’로 전락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진수 동행심리치료센터장은 책 『나 요즘, 분노 조절 장애인가?』에서 “분노한 사람은 법도 질서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분노를 잘못 표현해서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며 “적절한 감성수위와 표현수위를 지니면서 분노의 감정을 털어 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그런 감정에 수용적이다”라고 말한다. 이어 “술을 마시면 무의식에 대한 의식의 통제력이 떨어져 문제가 생긴다. 술기운에 무의식이 활성화되면서, 평소에 숨겨뒀던 감정이 폭발하기 때문”이라며 “술이 문제인 것 같지만 그건 현상적인 부분일 뿐이고,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던 미해결된 감정이 폭발했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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