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 타계에 조금 싸늘한 반응… 그가 만든 샤넬의 정체성은?
칼 라거펠트 타계에 조금 싸늘한 반응… 그가 만든 샤넬의 정체성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2.20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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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샤넬' 홈페이지 캡처]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샤넬의 수장’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 1982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샤넬에 입성한 그는, 37년 동안 샤넬의 간판이자 패션 업계 아이콘이었다. 생전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라거펠트. 그런데 거장의 죽음에 왠지 추모 분위기가 그다지 크지 않은 느낌이다. 

일부 대중의 반응이 싸늘하다. 트위터 등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관련 기사에서 “당신의 컬렉션이 얼마나 대단했던, 당신이 샤넬과 패션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든 당신이 공개적으로 미투운동을 조롱하고 성추행범을 옹호하고 모델들을 희롱한 것을 절대 잊지 않을 것” “예전이었으면 칼 라거펠트 사망에 한 시대가 저무느니 어쩌니 하고 감상을 썼겠지만, 이제 미투운동을 지겹다고 표현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든다.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라는 식의 게시글이나 댓글들이 수천개가 넘는 ‘좋아요’나 추천을 받고 있다.  

라거펠트가 이런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가 지난해 프랑스 인디 매거진 <누메로>와 진행한 인터뷰 때문이다. 라거펠트는 이 인터뷰에서 “미투운동이 이제 지긋지긋하다. 내가 가장 충격받은 것은 20여 년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여배우들이었다. 목격자 진술이 없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하비 와인스타인(전 세계적으로 미투운동을 촉발한 인물 )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또한 라거펠트는 지난해 모델의 팬츠를 벗기려고 하는 등 성희롱과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파면된 전직 패션 디렉터 칼 템플라를 옹호하며 “이제 모델들이 포즈를 취할 때 먼저 편안한지 물어봐야 하며 디자이너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불쌍한 칼 템플라에 대한 비난이 믿을 수 없다”며 “만약 팬츠를 벗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모델을 하지 말고 수녀가 되라. 수녀원에는 당신을 위한 자리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수녀원은 현재 모집 중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인터뷰 발언으로 뉴욕의 모델 인권 보호단체 ‘모델 얼라이언스’를 시작해 패션계와 영화계에서의 라거펠트를 향한 비난이 들불처럼 번졌고, 샤넬 불매운동까지 일기 시작했다. 당시 ‘모델 얼라이언스’의 창립자 사라 지프는 “그리 놀랍지 않지만 칼 라거펠트는 여성의 체중과 몸매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과 공격적으로 몸매를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2014년 국내에 출간된 『칼 라거펠트, 금기의 어록』에서 라거펠트가 “샤넬을 숭배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나는 샤넬이 아니다”라고 쓴 것처럼, 37년 동안 샤넬의 정신을 지배한 라거펠트의 사상은 샤넬의 창립자이자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창립정신과 명백히 ‘다른’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려 했던 라거펠트와 달리, 가브리엘 샤넬은 20세기 초 여성들을 몸을 억압하는 패션에서 자유롭게 한 대표적 인물이다. 김경민 작가는 책 『세상을 바꾼 질문들』에서 “그녀는 여성들에게 있어 일종의 ‘해방자’인 셈”이라며 “샤넬은 당시 유행하던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기 위한 거의 고문에 가까운 코르셋 조이기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과도한 장신구들을 혐오했다. 그녀는 이런 것들이 여자를 남자의 장식품으로 만든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과거 브랜드 ‘샤넬’에는 ‘왜 여자들은 움직이기도 힘든 과도한 장식의 모자와 긴 치마를 입고 다녀야 하는가?’ ‘단순한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인가?’라는 창립자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나는 패션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바로 패션이다”라는 가브리엘 샤넬의 말처럼 곧 브랜드 ‘샤넬’의 정체성이 됐다.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 버려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2,400명의 직원과 26개의 공방을 둔 프랑스에서 가장 비싼 옷을 파는 패션 회사를 차려낸 샤넬의 인생 역시 그 주체성이 뭇 여성의 귀감이 됐다.  

이런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이 세운 정체성을 “지루함”이라 치부하고 파격 행보를 이어갔던 칼라거펠트. 그가 만든 옷은 잘 팔렸으며, 그 때문에 칭찬도 들어왔지만, “라거펠트가 점점 샤넬 스타일에 불손함을 더한다” “샤넬을 그저 예쁜 옷으로 만들었다”라는 전통적인 샤넬 추종자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패션에는 민감했지만, 여성 인권 신장을 향한 시대의 흐름에는 둔감했던 칼 라거펠트.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들을 그다지 위대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샤넬’은 불매운동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다소 냉정할 수 있는 평가는, 샤넬을 포함한 기업가와 기업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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