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법통을 계승" 
[포토인북]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법통을 계승"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2.17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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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갸날의 『독립선언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현재화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3·1운동은 어느 특정한 날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가 중심을 이루지만, 그 이전에 이미 독립운동의 주무대인 만주와 일제 식민주의자의 수도 동경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외침이 울려 퍼졌고, 3월 1일부터 두 달 동안에만 전국에서 1,200회가 넘는 시위가 진행된 거족적인 운동이었다"고 전한다. 

이 책에 담긴 3개의 '독립선언서'와 그 안에 담긴 독립을 위한 우리 민족의 열망을 소개한다. 

[사진제공=도서출판 가갸날]
[사진제공=도서출판 가갸날]

거족적인 독립운동의 불쏘시게가 된 '3·1독립선언서'. 우리 민족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천명한 유려한 문장과 비폭력주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빛을 더하고 있다. 최남선이 작성했으며, 공약삼장은 한용운이 추가했다.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사에서 인쇄해 3·1만세운동과 함께 전국에 뿌려졌다. 

[사진제공=도서출판 가갸날]

3·1운동에 참가한 군중이 독립문 주위에 모여 독립문 상단에 새겨진 태극기 문양을 바라보고 있다. 당시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모색하고 있던 천도교가 중심이 돼 민족대표 33인이 결성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고종의 국장에 맞춰 3월 1일이 거사일로 정해졌다. 비폭력주의를 표방한 지도부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본 경찰에 연행돼갔지만, 학생과 시민들은 독자적인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의 주요 도시와 해외 동포사회로 퍼져나가 독립을 열망하는 우리 민족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사진제공=도서출판 가갸날]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만세를 부르며 덕수궁 앞 큰길을 행진하고 있다. 고종의 국장을 맞아 전국에서 올라온 민중이 합세하면서 수만명이 서울 시내 도처에서 시가행진을 벌였고, 시위 첫날인 3월 1일부터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사진제공=도서출판 가갸날]

1920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 3면에 실린 3·1운동 지도자들의 재판 기사다. '금일 공판 시작되는 독립당 수령 사십팔인' 제목 아래 사진 순서대로 이름을 명기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1인(33명 가운데 김병조는 상해 망명, 양한묵은 사망)과 만세운동을 함께 계획하고 주도한 17인 모두 48명이 함께 재판을 받았다. 


『독립선언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가갸날 (기획) 지음 | 가갸날 펴냄|128쪽|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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