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우울증 환자를 온전히 이해하기만 해도 이러한 생각들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인과는 거리가 멀다. 3층 계단에 올라가는 게 힘들어 중간중간 한참을 쉬었다가 올라간다. 밥을 먹을 의욕도, 힘도 없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침대에서 겨우 기어 나와 약을 먹었다가 토하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다. 칼은커녕 숟가락조차 들 힘도 없다. 중증 우울증 환자의 경우 정말로 죽을 힘도 없다. 농담이 아니다. 육체적인 힘을 사용할 수가 없는 거다. <19~20쪽>
감정을 인지하는 훈련을 하고 싶어서 감정 카드를 활용했다. 카드는 크게 5가지 카테고리로 구분돼 있다. 기쁨, 슬픔, 두려움, 분노, 불쾌/혐오다. 그리고 각각에 해당하는 감정 표현들이 대분류 아래에 적혀 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 카드도 한 장 들어 있는데 이 카드는 '시원섭섭'처럼 2개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거나, 정형화하기 어려운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카드였다.
이 카드들을 활용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일기에 적어봤다. 슬프다면 어떤 슬픔을 느꼈는지, 감정카드를 살펴보며 내 감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슬픔이란 감정도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다소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색한 느낌도 들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다. <35~36쪽>
'심리적 부검'이란 자살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과정이다. 전문가들이 자살한 이의 과거 행적을 수집하고, 가족 등 주변 사람과의 면담을 통해 자살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혀낸다. 수집하는 정보의 범위는 방대하고 치밀하다. 의료 기록부터 시작해서 재산 상황, 학력, 병력 등 고인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한다. 심지어 휴대폰 메시지부터 인터넷에 쓴 글까지 들여다본다.
핀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심리적 부검을 체계적으로 활용해 자살률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1987년 1년 동안 발생한 자살 사건 1,397건을 부검해 자살자 3분의 2 이상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조차 모른 채 사망했다는 점도 발견했다. <57~58쪽>
정신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과 그의 가족은 정신질환자로 '낙인'찍혀 사회생활 또는 가정생활이 깨지는 상황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난 당사자가 아닌 아들이었는데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하물며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어떤 심경이겠는가.
당장 취업부터 걱정이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른바 '용모단정' 상태부터 가정환경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면접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병력을 감히 말할 수도, 말해서도 안 된다.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탄 임원들이 볼 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그저 정신력이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하는 우리 팀에 있어서는 안 될 '관심사병'이다. 심지어 일부 몰지각한 리더는 자신이 썩어빠진 정신력을 싹 개조해주겠다는 만용을 부린다. <71~72쪽>
『우울해도 괜찮아』
문성철 지음 | 책읽는귀족 펴냄|240쪽|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