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대통령의 자격… 인사 청탁에 철통같았던 조지 워싱턴
[포토인북] 대통령의 자격… 인사 청탁에 철통같았던 조지 워싱턴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2.13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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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존의 『송근존의 미국대통령이야기1』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대통령 잔혹사 시대다.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감옥에 가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현재도 두명의 대통령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에서 '대통령'을 찾아보기 어려운 원인이기도 한듯하다. 

하지만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많은 나라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닌 사람들이 대통령직에 올랐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건국 이후 줄곧 대통령제를 이어온 미국의 경우, 존경 받는 대통령을 다수 배출했다. 이 책은 10명의 존경 받는 미국 대통령을 소개한다. 

렉싱턴-콩코드 전투. [사진제공=도서출판 글통]
렉싱턴-콩코드 전투. [사진제공=도서출판 글통]

1775년 4월 19일 영국군이 보스턴 차 사건의 주모자이기도 한 존 핸콕과 샘 애덤스를 체포하기 위해 렉싱턴으로 진격하는 도중 대륙군 민병대를 만나 총격전을 벌였다. 영국군은 다시 콩코드로 진격했으나 핸콕과 애덤스를 체포하는 데 실패하고 다시 민병대의 기습을 받았다. 이 충돌로 양측에서 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렇게 독립전쟁이 시작됐다. 당시 독립군 총사령관은 훗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었다. 

뉴욕 전투. [사진제공=도서출판 글통]
뉴욕 전투. [사진제공=도서출판 글통]

영국군은 뉴욕시 근방 스탠턴 아일랜드에 18세기 최대의 원정군을 집결시켰다. 영국군은 3만2,000명의 훈련된 정규군이었고 미군은 겨우 2만3,000명에 불과했다. 결과는 완패였다. 미군은 2,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영국군은 380명의 사상자를 낸 일방적인 전투였다. 앞쪽으로는 영국군을 마주하고 뒤쪽으로는 이스트강에 포위된 상황에서 워싱턴 사령관은 각 부대를 순차적으로 작은 배에 태워 이스트강을 건너 맨해튼으로 탈출시켰다. 본인은 마지막 배 중 하나를 타고 강을 건넜다. 

영국군의 항복. [사진제공=도서출판 글통]
영국군의 항복. [사진제공=도서출판 글통]

독립선언 2주년이 된 1778년 여름 독립군에서 승리의 서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1778년 4월 30일, 프랑스-인디언 전쟁 패배 이후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프랑스가 미국을 돕겠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드 그라스가 이끄는 군함 29척과 3,000명의 병력이 미군에 합류하자 영국군은 수세에 몰렸고, 10월 16일 영국군 함대를 이끄는 콘월리스가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에 그친다. 결국 10월 17일 휴전을 요청하고 10월 19일 무조건 항복했다. 

워싱턴 대통령 취임식. [사진제공=도서출판 글통]
워싱턴 대통령 취임식. [사진제공=도서출판 글통]

미국의 연방헌법이 채택된 후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 자리를 제안받고 선거에 출마한다. 1789년 2월 4일 69명의 대의원이 투표에 참여했고 만장일치로 워싱턴이 대통령에 선출됐다. 애덤스는 부통령에 당선됐다. 워싱턴은 취임하자마자 많은 사람으로부터 연방정부에 취직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아야 했다. 그는 공정한 인선을 고집했고 기준에 부합하는 적합한 사람만 임명했다. 어떤 사람이 애덤스에게 인사 청탁을 하자 애덤스는 "워싱턴이 인사만큼은 누구의 부탁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송근존의 미국대통령이야기1』 
송근존 지음 | 글통 펴냄|27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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