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
그리운 사람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9.02.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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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잠 못 이루는 겨울밤 해진 양말을 깁는다. 어인 일인지 딴 데는 멀쩡한데 발가락 부분이 쉬이 떨어진다. 외출했다가 갑자기 양말 발가락 부분이 해지면 왠지 마음도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경우 쓰레기통에 버리기 예사였다. 부존자원(賦存資源)이 부족한 우리의 실정을 염두에 둔 이즈막엔 물자가 아까워 가족들의 해진 양말을 깁기 예사다. 양말을 깁노라니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느 겨울밤으로 기억된다.

할머니께서 쪄 준 고구마를 급히 먹고 갑자기 배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이를 본 할머니는 나의 발에서 황급히 양말을 벗기더니 그것을 화롯불에 쬐었다. 곧이어 따뜻해진 양말을 나의 배에 대고 할머니가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러자 불과 얼마 후 거짓말처럼 복통이 가라앉는 것이었다. 신효(神效)한 마음에 내 배 위에 얹혔던 고린내 나는 양말을 이리저리 살펴봤던 기억이 엊그제 일인 양 새롭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할머니의 손은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그토록 극심했던 뱃속의 통증을 쉽사리 가라앉힌단 말인가. 그야말로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이는 아마도 나에 대한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복통을 쉽사리 낫게 했나 보다. 사람의 손은 단순한 인체의 손만은 아닌 성싶다. 인체의 두 손은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젓가락 문화로부터 기인됐다고 일컫는 게 일리가 있는 듯하다. 이로 보아 손은 눈부신 문명 발달에 지대한 공을 세운 셈이다. 한편 인체의 손은 인간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손이 행하는 일을 흔히 마음에 비유하는 말로, ‘손을 씻었다’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았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쁜 일을 행하던 사람이 개과천선할 때 ‘손을 씻었다’고 말한다. 남을 도울 때는 ‘손을 내밀었다’이며 어떤 일을 타인과 도모할 때나 화해를 상징할 때는 ‘손을 잡았다’이다. 이 중에서 나는 손을 ‘내밀었다’는 말을 평소에 좋아한다. 이는 고(故) 장기려 박사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세상을 사노라면 소인배(小人輩)와 마주할 때가 있다. 소인의 특성이 마음자락이 옹색하고 인색하며 매우 이기적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무엇이든 자신의 본위로 행동한다. 즉 이타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장기려 박사는 남달랐다.

그는 의사로서 우리나라 외과 학회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명성과 달리 삶은 매우 검박하고 서민적이었다. 평생을 서민 아파트 한 채, 그가 고인이 되어 묻힐 십여 평의 땅조차 없었다고 한다. 사십 년 병원 원장, 이십 년 간호대학 학장을 맡았던 사회적 신분에 비해 생전 그의 삶은 너무나 초라했다. 초라하다 못하여 장기려 박사의 삶은 항상 빈한(貧寒)했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하여 병원비를 대신 지급해 주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월급은 가불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런 장기려 박사의 인품을 소문으로 들은 가난한 환자들은 병원비와 약값을 구하기 위하여 걸핏하면 장기려 박사한테 손을 내밀곤 했단다. 그때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그들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심지어는 병원비가 없어 애타는 이들에게 병원 뒷문을 열어주며 몰래 도망가라고 일렀다는 일화에선 참으로 따뜻한 인간미마저 느낀다.

빈자들에겐 병마보다 더 무서운 게 가난의 고통이다.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을 위해 병원 뒷문을 열어주었던 장기려 박사는 어머니처럼 온화하고 헌신적인 손을 지녔던 분이다. 

평소 이문 남는 일에 서툴렀던 그는 요즘 세태에 비춰본다면 참으로 엄청난 바보다. 무슨 일이든 눈 저울질 하여 이익이 되어야만 인간관계도 맺지 않는가. 그러나 인색한 사람은 부모도 싫어한다고 했다. 마음그릇이 비좁아 자린고비인 사람은 성품도 얼음장처럼 냉랭하다. 이와 달리 평생을 빈자(貧者)에 대한 베풂과 사랑으로 살아온 다정다감한 장기려 박사다. 

태양은 날만 새면 변함없이 모든 만물 위에 그 빛을 아낌없이 쏟아주고 있잖은가. 태양이 비껴간 곳엔 어둠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둠은 고통이요, 역경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태양은 절망의 어둠을 물리치고 희망을 안겨주는 것으로 흔히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 장기려 박사는 빈자들의 병원비만 대준 게 아니었다. 절망과 좌절로 어둠에 갇힌 이들에게 광명의 빛을 한껏 안겨준 태양 같은 분이었다. 요즘 따라 장기려 박사가 못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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