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 
[포토인북]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2.05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지현의 『기억 전쟁』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역사 앞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나치의 공범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거나 조선을 식믹지 삼아 수탈한 일본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의 피해자로 기억되는 등 전후세대 사이에서 복잡다단한 기억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저자는 홀로코스트,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어떤 기억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피며, '기억'과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서는 '가해자가 어떻게 희생자로 둔갑하는가?' '민족주의는 어떻게 공범자를 희생자로 만드는가?' '전사자 숭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선량한 학살자는 있을 수 있는가?' 등 날 선 질문을 던지며 전후 기억 문제를 직시한다. 

[사진제공=도서출판 휴머니스트]
[사진제공=도서출판 휴머니스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사진이다. 두 갈래의 철로가 수용소를 향해 달려가다가 정문 바로 앞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듯 보인다. 독자들에게도 가장 익숙한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만 놓고 보면 누구든 밖에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정문을 향해 찍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은 수용소 안에서 밖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한 줄기로 계속되던 철로가 정문을 지나 수용소 안으로 들어오면서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다. 아마도 새로 도착한 유대인들을 빠르게 정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다만 나치 독일군 병사들인 찍은 필름을 모아 발매한 DVD '제3제국의 병사들:일상, 삶, 생존'에서 끔찍한 전쟁과 나치의 범죄행위는 생활의 나른한 평화로 대체됐다. 

[사진제공=도서출판 휴머니스트]
[사진제공=도서출판 휴머니스트]

전후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인들은 자신들을 '히틀러의 첫 번째 희생자'로 기억해왔다. 그러나 이 기억은 조작된 것이다. 통계를 보면 적어도 인구 비율상으로는 오스트리아인들이 독일인들보다도 더 적극적인 히틀러 협력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협력의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통계까지 없애거나 바꿀 수는 없다. 당시 오스트리아 인구는 제3제국 전체 인구의 8%에 불과했지만, 나치 친위대(SS)에서 오스트리아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4%에 달했다.

[사진제공=도서출판 휴머니스트]
[사진제공=도서출판 휴머니스트]

에스토니아처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는 '점령 박물관'이 있다. 나치 독일과 소련이라는 두 전체주의 체제에 점령당했던 당시 라트비아인의 고통과 희생을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된다. 전시된 사진은 시체가 즐비한 학살 현장에서 총살 당하기 직전의 유대인 여성들을 찍은 모습을 담았다. 맨 왼쪽 여성 뒤로 공포에 질린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면에서 라트비아인들은 희생자이지만 동시에 학살자이기도 하다. 자경단원이나 지방 경찰의 인원으로 혹은 일반 시민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지만 사진에서는 이런 익명의 학살 주체들에 관한 어떤 언급도 없다. 

[사진제공=도서출판 휴머니스트]
[사진제공=도서출판 휴머니스트]

프런티어 역사관은 미국의 문명이 미시시피강을 건너 서부를 개척했다는 승리의 역사관이기도 하다. 백인 이주민이 선주민 인디언을 학살하고 추방한 역사를 미국의 성공 스토리로 도금한 것이다. 독일 제국의 인류지리학자인 프리드리히 라첼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가져온 생존경쟁 개념을 접목시킴으로써 유럽계 이주민이 자행한 인디언 절멸 정책을 정당화했다. 


『기억 전쟁』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300쪽|18,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